‘3일 전 연차’ 거부한 사장님은 왜 무죄?…대법, 노동자 휴가권보다 ‘시민의 발’ 먼저
‘3일 전 연차’ 거부한 사장님은 왜 무죄?…대법, 노동자 휴가권보다 ‘시민의 발’ 먼저
대법원, 사용자의 ‘시기변경권’ 행사 기준 첫 판시
노사 단체협약과 공익성 무게 둔 판결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금요일에 신청한 월요일 연차를 거부당한 버스기사, 법원은 왜 노동자의 권리 대신 연차를 불승인한 사장님의 손을 들어줬을까. 대법원은 시민의 발인 버스 운행의 공익성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금요일 오후, 사흘 뒤 월요일에 연차를 쓰겠다는 버스기사의 신청서. 회사는 단체협약을 이유로 거부했다. 기사는 출근하지 않았고, 대표는 법정에 섰다. 노동자의 신성한 휴가권을 침해했다는 혐의였지만,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노동자의 권리보다 시민의 발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이었다.
월요일 아침, 멈춰 선 버스 한 대
사건은 2019년 7월 부산의 한 시내버스 회사에서 시작됐다. 버스기사 B씨는 금요일이었던 7월 5일, 다음 주 월요일인 8일에 연차 휴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회사 대표 A씨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에 ‘휴가는 3일 전까지 신청해야 한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주말을 제외하면 사실상 하루 전에 통보한 셈이었다.
B씨는 회사의 불승인에도 불구하고 월요일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결국 A씨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노동자의 정당한 연차휴가 사용을 사용자가 부당하게 막았다는 것이 검찰의 기소 이유였다. 1심과 2심은 모두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사건은 대법원으로 향했다.
법정으로 간 ‘시기변경권’…핵심은 ‘사업상 막대한 지장’
대법원의 판단도 하급심과 같았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에 규정된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이었다. 이 조항은 노동자가 신청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에 한해 사용자가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한다.
법원은 B씨가 쉬려던 7월 8일의 상황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봤다. 그날은 승객이 많은 월요일이었고, 이미 회사 버스 21대 중 2대가 정비 등을 이유로 운행을 쉬는 ‘운휴’로 예정돼 있었다.
여기에 B씨마저 갑자기 빠지면 운행 불가 버스는 총 3대로 늘어난다. 재판부는 “배차 간격이 길어져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감수해야 할 교통상 불편이 가중될 것이 명백했다”고 지적했다. A씨가 B씨의 휴가를 거부한 것이 단순히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한 것이 아니라, 시민의 불편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3일’의 무게, 대체인력 구할 최소한의 시간
결국 관건은 단체협약에 명시된 ‘3일 전 신청’ 규정의 정당성이었다. 법원은 이 규정이 노동자의 휴가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독소 조항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시내버스처럼 정시성과 공공성이 중요한 사업에서, 회사가 대체 운전기사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합리적인 기간’으로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3일이라는 기간은 실질적으로 근로자의 휴가에 관한 시기지정권을 박탈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장기간이 아니다”라고 명시했다. 이어 “B씨가 이 기한을 지킬 수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음이 확인되지 않고, 그를 대체할 근무자도 당시에 없었다”고 못 박았다.
B씨의 갑작스러운 휴가 통보가 회사의 시기변경권 행사를 정당화할 만큼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명백한 위험이 있었다는 의미다.
대법원의 첫 기준 제시, ‘모든 사업장에 적용은 아냐’
이번 판결은 사용자가 언제, 어떤 근거로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첫 구체적인 기준 제시라는 점에서 법조계의 주목을 받는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인지는 ▲근로자의 업무 내용과 중요도 ▲남은 근무자들의 업무량 ▲대체근로자 확보의 객관적 어려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판결이 모든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마음대로 연차를 거부할 수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법원은 버스 운송사업처럼 공공의 이익과 직결되고, 대체인력 투입이 필수적인 업종의 특수성을 깊이 고려했다. 노동자의 휴식권과 사업장의 공익적 책임이 충돌할 때, 법원이 어떤 가치에 무게를 두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판례로 기록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