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데리고 사라진 사실혼 배우자…"내 핏줄 데려갔다" 우겨도 '미성년자 약취죄'
아이 데리고 사라진 사실혼 배우자…"내 핏줄 데려갔다" 우겨도 '미성년자 약취죄'
아이 데리고 집 나가버린 사실혼 남편
'미성년자 약취죄'로 경찰 신고했지만, 미온적 반응
변호사들 "아이 친부라도, 미성년자 약취죄 성립 가능"

갓 태어난 아이를 함께 키워가던 A씨와 B씨는 어느 날 크게 싸우게 됐다. 그런데 B씨가 아이를 말도 없이 데리고 나가면서, 갈등은 더욱 커졌다. /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A씨는 남자친구 B씨와 함께 살며 아이를 낳았다. 혼인신고는 아직이었다. 다만, 아이가 태어났기에 A씨의 성(姓)을 따라 출생신고를 했다. 갓 태어난 아이를 함께 키워가던 A씨와 B씨는 어느 날 크게 싸우게 됐다. 그런데 B씨가 아이를 말도 없이 데리고 나가면서, 갈등은 더욱 커졌다.
아이를 보지 못한 기간이 점점 길어지자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조언에 따라 '미성년자 약취죄'로 B씨를 신고한 A씨. 그런데 경찰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납치한 것도 아니고 아이 아버지가 데려간 거라면 해당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형법 제287조는 '미성년자를 약취(略取) 또는 유인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의 친부나 친모가 아이를 데려간 경우에도 미성년자 약취죄가 성립할까. 사실, 해당 혐의가 적용되려면 폭행⋅협박 또는 불법적인 힘 등을 사용해야 한다. 경찰이 B씨에 대한 수사를 회의적으로 본 이유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이혼가정의 부모 중 일방이 면접교섭권을 악용하여 정당한 사유 없이 아이를 돌려보내지 않는 경우, '미성년자 약취유인죄'로 고소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데 수사기관 등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우리 형법이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법 정신에 기원을 둔 '최소개입 원칙'을 따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A씨의 경우는 다소 다르다고 변호사들은 봤다. "미성년자 약취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유는 현재 아이와 B씨가 법적으로 그 어떤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A씨와 B씨는 현재 법률상 혼인 관계가 아니다. 이에 아이의 친부로 B씨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지(認知)'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혼인외의 출생자에 대해 생부 또는 생모가 자기의 자녀라고 인정함으로써 법률상의 친자관계를 발생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혼인 외의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 인지가 있어야 비로소 법적으로 부모와의 관계가 형성된다. A씨 역시 해당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했다.
법률사무소 HY의 황미옥 변호사는 "'인지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며 "아이와 B씨 사이에는 어떤 입증도 없는 상태라 '미성년자 약취죄'가 성립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률사무소 위픽의 이민재 변호사도 "충분히 미성년자 약취죄가 성립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설령 인지 판결을 통해 친부로 인정됐더라도, 미성년자 약취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변호사들을 말했다. 법무법인 혜화의 박호동 변호사는 "인지 절차를 거친 법률상 친부여도 미성년자 약취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대법원은 "미성년자를 보호·감독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보호감독자의 보호·양육권을 침해하거나 자신의 보호·양육권을 남용하여 미성년자 본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때에는 미성년자에 대한 약취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미성년 자녀를 한쪽 부모가 잘 보호하고 양육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부모가 폭행이나 협박 등 사실상의 힘을 이용해 자녀를 데려간 경우 미성년자 약취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오고 있다.
다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실무적으로는 수사기관 대응이 미온적일 수 있다"며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변호사들은 입을 모았다.
한편, 법무법인 정향의 엄태완 변호사는 "형사고소와 별도로 가정법원에 유아인도 심판 청구도 제기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