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빚 상속 포기했는데…휴대폰 요금 냈다가 '빚더미' 오를라
동생 빚 상속 포기했는데…휴대폰 요금 냈다가 '빚더미' 오를라
▶ "밀린 요금 몇 만 원 냈을 뿐인데"…수억 원 빚더미 오르는 '법정 단순승인'의 덫

사망한 가족의 소액 채무를 대신 갚으면 '법정 단순승인'으로 간주되어 막대한 빚을 상속받을 수 있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무심코 낸 동생 휴대폰 요금, 수억 빚으로…'법정 단순승인'의 함정
고인이 남긴 휴대폰 요금 몇 만 원. 무심코 대신 내줬다가 수억 원의 빚을 통째로 떠안게 될 수 있다면 믿으시겠는가.
실제로 상속을 포기한 형이 사망한 동생의 휴대폰을 해지하려다 빚더미에 오를 뻔한 아찔한 사연이 알려지며, '상속 단순승인' 제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무심코 낸 요금, '법정 단순승인'의 스위치를 켜다
형의 걱정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우리 민법 제1026조가 규정한 '법정 단순승인'이라는 강력한 조항 때문이다.
이는 상속인이 고인의 재산을 팔거나, 빚을 대신 갚아주는 등 상속재산에 손을 대는 순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법적으로 '상속을 전부 승인'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즉, "나는 고인의 모든 재산과 빚을 책임지겠습니다"라는 선언을 법원이 강제하는 셈이다. 휴대폰 미납 요금 몇 만 원을 갚는 행위가 바로 이 '스위치'를 켜는 행동이 될 수 있다.
법무법인 심의 심준섭 변호사는 "미납요금 납부는 피상속인의 채무를 변제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법률사무소 조이의 윤관열 변호사 역시 "상속 채무 변제 행위로 해석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괜찮다" vs "위험하다"…엇갈린 법조계 시각
물론 모든 변호사가 같은 의견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홍현필 변호사는 "법원의 상속포기 결정이 확정되었다면, 그 이후의 휴대폰 요금 납부 행위는 상속의 단순승인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소수 의견을 제시했다. 이미 법적으로 상속인 지위가 소멸했으므로, 통신 계약을 정리하는 행위만으로 상속포기 효력이 번복되지는 않는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대다수 변호사들은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의 위험성을 차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법률사무소 무율의 김도현 변호사는 "피상속인의 재산이나 채무에 관여하지 않고, 채권자가 직접 정리하도록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찰나의 판단이 수억 원의 빚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갈림길에서, 굳이 위험한 선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빚더미 피하는 '3단계 액션 플랜'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까? 변호사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해법은 명확하다. 바로 다음의 '3단계 액션 플랜'을 따르는 것이다.
1단계: 절대 먼저 내지 마라 (Do NOT Pay First)
고인의 채무에 직접 손대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미납 요금이 소액이라도 절대 먼저 납부해서는 안 된다. 이는 '법정 단순승인'의 스위치를 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단계: '상속포기 결정문'으로 알려라 (Inform with Legal Document)
통신사에 연락해 고인의 사망 사실을 알리고, 법원으로부터 받은 '상속포기 결정문' 사본을 제출한다. 이를 통해 상속인이 존재하지 않아 변제 의무가 없음을 명확히 하고 계약 해지를 요청해야 한다. 통신사는 내부 절차에 따라 해당 채권을 손실 처리(상각)하고 계약을 해지하게 된다.
3단계: 번호가 필요하면 '신규 가입'하라 (New Subscription)
만약 고인의 번호를 꼭 사용하고 싶다면, 기존 계약을 물려받는 '명의 변경'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신규 가입'으로 해당 번호를 취득해야 한다. 이 경우 당신은 고인의 채무와 무관한 새로운 가입자가 되므로 상속 문제에서 자유로워진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부채를 지는 사례가 늘면서, '상속 포기'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고인을 떠나보낸 슬픔 속에서 처리하는 사소한 행정 절차가 수억 원의 빚으로 돌아오는 법적 굴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의 무게를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