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 옮기고 검사 회피하는 연인, 처벌할 수 있나요?
성병 옮기고 검사 회피하는 연인, 처벌할 수 있나요?
헤르페스 2형 '초감염' 피해 여성의 호소…전문가들 '상해죄 고소'와 '민사소송' 가능성 제시, 입증 책임의 벽은 높아

A씨는 연인이 성병을 옮긴 것으로 의심하지만, 상대방은 검사를 회피하고 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성병을 옮긴 것으로 의심되는 연인이 검사를 회피한다면,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을까.
헤르페스 2형 확진 판정으로 일상이 무너진 한 여성의 사연에 법률 전문가들이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이라는 두 개의 칼을 제시했다.
항체도 생기기 전 '초감염'…연인의 배신
A씨의 지옥은 연인과 관계를 가진 지 나흘 만에 시작됐다. 살을 에는 통증과 고열, 몸살이 덮쳤고, 산부인과에서 헤르페스 2형 확진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불과 10개월 전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던 그녀였다.
결정적 증거는 피검사 결과였다. 급성 감염을 뜻하는 IgM 항체마저 음성이었고, 과거 감염 이력을 보여주는 IgG 항체 역시 '음성'이었다. 이는 항체가 채 형성되기도 전인 극초기 감염 상태, 즉 '초감염'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의학적 소견이다. 감염원이 바로 직전의 성관계 상대방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A씨는 연인을 감염원으로 지목했지만, 그의 반응은 차가웠다. 검사를 받겠다는 약속은 회피와 무시로 이어졌고, 끝내 "검사받는다고 뭐가 달라지냐"는 말로 A씨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상해죄'라는 칼…'알고도 그랬다'는 증거, 어디서 찾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들은 형사상 '상해죄' 고소를 제시한다.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성관계를 가져 병을 옮겼다면, 상대방의 신체를 훼손한 상해 행위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공명의 김준성 변호사는 "상대방에게 미필적 고의(결과 발생을 예견하고도 용인한 것)가 있음은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상해죄 적용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이 길은 험난하다. 검사 출신인 법무법인 이엘 민경철 변호사는 "상대방에게 고의가 있어야 죄가 성립하므로, 성병에 걸린 사실을 알면서 숨기고 성관계를 했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상대방의 머릿속 생각을 카메라로 찍어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상대가 검사 결과를 숨기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직접 이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 법의 문턱 앞에서 A씨는 또 한 번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형사가 안 되면 민사로… 그의 '도망'이 증거가 된다
형사 처벌의 높은 벽 앞에서 현실적 대안은 민사소송이다. 상대방의 불법행위로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길이다. 치료비는 기본이다. 고통으로 일하지 못한 기간의 손실(일실수익)과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까지 청구할 수 있다.
특히 민사소송에서는 법원에 '감정신청'을 통해 상대방의 감염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열릴 수 있다. 이는 형사 고소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했던 A씨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는 "소송 과정에서 감정신청을 통해 상대방의 감염 여부를 확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더 나아가, 법률사무소 새율의 최성현 변호사는 "상대방의 검사 회피는 오히려 재판에서 불리한 정황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비겁한 회피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전문가들의 조언은 명확하다. 지금 A씨가 할 일은 명확한 시간 순서가 담긴 의료 기록, 상대방과 나눈 대화 내용 등 모든 증거를 차곡차곡 모으는 것이다. 이 증거들은 법정에서 진실을 밝힐 무기가 된다. 한 사람의 무책임이 타인의 삶을 얼마나 깊이 파괴하는지, 이제 법의 시간이 그 책임을 물을 채비를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