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된 집 팔았는데, 몇 달 뒤 '누수'…수리비 달라는 새 주인, 줘야 할까?
30년 된 집 팔았는데, 몇 달 뒤 '누수'…수리비 달라는 새 주인, 줘야 할까?
잔금 4개월 만에 폭우로 베란다 누수 발생…사전 협의 없이 교체한 분배기 비용까지 청구

30년 된 집을 매도한 지 4개월 후 폭우로 누수가 발생하자, 새 주인이 수리비를 청구했다. / AI 생성 이미지
30년 된 공동주택을 판 A씨는 최근 황당한 연락을 받았다. 집을 사 간 새 주인 B씨가 베란다 누수 수리비와 분배기 교체 비용을 내라고 요구한 것이다.
A씨가 거주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B씨가 이사 온 지 약 4개월 만에 폭우가 내린 뒤에야 발생한 누수였다.
심지어 B씨는 A씨와 상의도 없이 이미 수리를 마친 뒤 비용을 청구했다. A씨는 이 돈을 물어줘야 할까?
잔금 4개월 뒤 '폭우'에 누수…원인은 '30년 노후화'
A씨는 지난해 연말 30년 된 공동주택 매매 계약을 맺고, 올해 3월 말 잔금을 치르며 집을 넘겼다. 계약서엔 별다른 특약 없이 '관례에 따른다'고만 기재했다.
문제는 잔금을 치른 지 약 4개월이 지난 올해 7월 초에 터졌다. 폭우가 쏟아진 뒤 B씨로부터 베란다에 비가 새어 누수가 발생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B씨가 부른 업체는 '30년 전 시공한 외부 샷시 하단 미장 노후화로 인한 빗물 들이침'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B씨는 A씨에게 알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보수 공사를 진행한 뒤, 공사확인서와 견적서를 보내며 비용을 청구했다. 심지어 잔금 다음 날 교체했다는 분배기 비용까지 '누수 관련 비용'이라며 함께 청구했다.
"계약 당시 없던 하자"…변호사들 "매도인 책임 없다"에 무게
결론부터 말하면, A씨가 B씨의 요구를 들어줄 법적 의무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변호사들은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이 성립하기 위한 요건이 까다롭고, 이 사건은 그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민법상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민법 제580조)이 인정되려면 하자가 '매매계약 성립 당시'에 이미 존재해야 한다. 또 매수인이 그 하자를 과실 없이 알지 못했어야 한다.
모두로 법률사무소 한대섭 변호사는 "30년 된 아파트의 샷시 하단 미장 노후화가 원인이라면 건물의 자연스러운 노후 현상일 뿐, 매매계약 당시에 존재했던 숨은 하자로 단정 짓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거주하는 동안 누수가 전혀 없었고 폭우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비로소 발생한 문제라면, 계약 이후 발생한 새로운 문제일 확률이 높다"고 짚었다.
와이에이치 법률사무소 김영호 변호사도 "이 사건 누수는 잔금일 이후 약 4개월 뒤 폭우라는 외부 요인으로 발생하였고, 거주 중 누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잔금일 당시 하자가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판례 역시 건물의 노후화 가능성을 매수인이 예견할 수 있었던 경우, 매도인의 책임을 제한하고 있다.
로버스 법률사무소 신은정 변호사는 "30년 된 주택에서 잔금 지급 후 수개월이 지나 폭우로 인해 발생한 누수나 샷시의 자연스러운 노후화는 매도인이 책임질 숨은 하자로 보기 어렵다"며 "두 가지 수리 비용 모두 A씨가 배상할 법적 의무가 인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협의 없이 수리부터 한 매수인…'원인 증명' 스스로 어렵게 만들어
변호사들은 B씨가 A씨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수리를 진행한 점도 A씨에게 유리한 사정이라고 지적했다. 하자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증명해야 하는 쪽은 매수인인데, 스스로 그 증명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우선 이민철 변호사는 "매수인이 객관적인 원인 규명 절차 없이 단독으로 수리를 강행하여 현장을 훼손했다는 점이 가장 주목해야 할 법리적 약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매수인이 일방적으로 공사를 진행해 버렸으므로, 추후 법정에서 사설 업체의 견적서만으로는 해당 누수가 잔금일 이전부터 존재했던 숨은 하자인지 입증하기가 매우 까다로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배기 교체 건은 더욱 A씨에게 책임이 없다는 게 변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A씨 거주 중 문제가 없었고, B씨도 잔금 전 집을 확인할 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잔금 다음 날 통보도 없이 교체하고 수개월이 지나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한대섭 변호사는 "매수인이 잔금 처리 바로 다음 날 A씨에게 알리지도 않고 임의로 분배기를 교체한 후 일방적으로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