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번 보냈다가 '영구정지'…오픈채팅 '통매음 피싱'의 덫
사진 한번 보냈다가 '영구정지'…오픈채팅 '통매음 피싱'의 덫
상대 동의 믿고 사진 전송했다가 '통매음' 신고…전문가들 "섣부른 대응은 금물, 입증이 관건"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상대방의 "응"이라는 한마디를 동의로 믿고 사진을 보낸 A씨가 계정 영구정지와 함께 '통매음 피싱'의 덫에 걸렸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상대방의 "응"이라는 한마디 동의를 믿고 사진을 보낸 남성이 계정 영구정지와 함께 '통매음 피싱'의 덫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상대방이 '응'이라고 답하기에 사진을 보냈을 뿐인데, 돌아온 것은 '계정 영구정지' 통보였습니다."
"볼래?" "응"…그 한마디가 '덫'이었다
A씨는 '노골적으로 보여달라'는 제목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들어갔다. 대화는 평범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잠시 후, A씨는 상대에게 "볼래?"라고 물었고, 상대는 지체 없이 "응"이라고 답했다. 동의의 표시라 확신한 A씨가 사진을 전송한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사진이 전송되자마자 A씨는 신고를 당했고, 대화방은 순식간에 폭파되어 사라졌다. 뒤이어 날아온 것은 카카오톡 계정을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영구정지' 통보. A씨의 손에는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았다. 그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대화 내용은 어땠는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스텔스 고소(상대방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진행하는 고소)를 당한 건 아닐지 두렵다"며 막막함을 호소했다.
법조계에서는 A씨의 사례를 '통매음 피싱'의 전형적인 수법으로 본다. 이는 합의를 가장해 음란한 대화나 사진을 유도한 뒤, 이를 빌미로 신고하거나 합의금을 뜯어내는 '헌터'들의 소행으로 의심된다.
이들이 주로 악용하는 통신매체이용음란죄(통매음)는 성폭력처벌법에 규정된 범죄다.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이나 그림 등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여기서 핵심 쟁점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행동했는지 여부다.
"동의했다"는 주장, 법정에서 통할까? "입증 못 하면 유죄"
변호사들은 A씨가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법무법인 심(心)의 심준섭 변호사는 "방 제목과 태그를 통해 대화의 성격이 암시됐고,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응')가 있었다면 통매음 성립이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캡틴법률사무소 박상호 변호사 역시 "서로 합의 하에 나눈 음란한 대화는 통매음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입증 책임'이 온전히 A씨에게 있다는 점이다. 법정에서는 "상대방이 동의했다"는 사실을 A씨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 대화 내용 캡처본 하나 없는 A씨의 상황은 치명적으로 불리하다. 수사기관이 카카오톡 서버 압수수색을 통해 대화 내용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그전까지 피의자는 속수무책으로 불안에 떨어야 한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는 "상대방의 명확한 동의를 입증한다면 혐의를 벗을 수 있겠지만, 만약 상대가 미성년자였다면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까지 추가될 수 있어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결국 '응'이라는 한 글자에 담긴 전후 맥락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재구성하느냐가 유무죄를 가를 열쇠다.
경찰 연락 오기 전,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할 '첫 번째 행동'
A씨처럼 벼랑 끝에 몰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섣부른 대응'을 가장 먼저 경계하라고 입을 모은다. JY법률사무소 이재용 변호사는 "경찰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섣불리 대응하지 말고, 특히 카카오톡 계정을 절대 탈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버에 남아있을 대화 기록이 유일한 구명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억이 사라지기 전, 당시 상황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록해두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법무법인 리버티의 김지진 변호사는 "방 제목, 태그, 대화 내용 등 사실관계를 최대한 상세히 정리해 '내용확약서' 형태로 남겨둬야 한다"며 "이는 경찰 조사나 재판에서 자신을 방어할 핵심 증거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경찰의 출석 요구가 오면, 그 즉시 변호사를 선임해 첫 조사부터 함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다.
A씨의 '응' 한 글자에 대한 믿음은, 이제 법의 심판대 위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증명해야 할 무거운 과제로 남았다. 익명성에 기댄 찰나의 소통이 언제든 날카로운 법적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온라인 시대의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