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로 몰렸는데 피해자가 "안 다쳤어요"…처벌 피할 수 있나?
'뺑소니'로 몰렸는데 피해자가 "안 다쳤어요"…처벌 피할 수 있나?
사고 몰라 귀가했다 자진신고, 피해자는 진단서 미제출…개인합의하면 사건 끝날까

A씨가 경미한 접촉사고를 인지 못 해 뺑소니(도주치상) 혐의를 받은 가운데, 피해자가 실제 상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 AI 생성 이미지
정차한 앞차를 살짝 들이받고도 사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귀가한 A씨. 다음 날에야 사고를 알고 경찰에 자진 신고했지만, 이미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한 뒤라 A씨는 도주치상(뺑소니)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피해자가 병원 진료나 치료를 받은 적이 전혀 없고, 아픈 곳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A씨는 피해자와 개인적으로 합의해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지만, 덜컥 겁이 났다.
피해자가 다치지 않았다고 해도 정말 '뺑소니' 혐의를 벗을 수 있는 걸까? 합의를 했는데도 나중에 벌금을 또 내야 하는 건 아닐까? A씨는 불안한 마음에 변호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피해자가 “안 다쳤다”는데, 그래도 도주치상죄 성립할까
변호사들은 피해자에게 실제 '상해'가 없다면 가장 무거운 혐의인 도주치상죄는 성립하기 어렵다고 봤다. 도주치상죄는 이름 그대로 피해자가 다쳤다는 사실(치상)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로웰 김훈희 변호사는 "피해자가 끝까지 진료를 받지 않고 실제 상해도 없다면, 도주치상 성립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진단서가 없더라도 다른 증거로 상해가 인정될 수 있지만, 피해자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아픈 곳이 없고 치료도 받지 않았다면, 상해 인정 가능성은 낮아진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태림 수원분사무소 김정현 변호사도 "실제 상해가 없고 이를 뒷받침하는 진단서도 없다면, 도주치상이 아니라 사고 후 미조치 등 다른 혐의가 문제 될 가능성을 수사기관이 검토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즉, 피해자가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확하다면, 인명피해가 없는 단순 물적 피해 사고로 처리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합의했는데 또 벌금 낼라"…합의하면 사건은 종결되나
그렇다면 피해자와 합의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변호사들은 합의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사건이 자동으로 종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합의금과 벌금은 성격이 전혀 다른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법률사무소 새율 최성현 변호사는 "도주치상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므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만으로 공소권이 소멸하지 않고, 수사기관이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송치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즉, 합의를 하더라도 혐의가 인정되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어 "개인합의와 형사처벌은 별개"라며 "합의를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면 송치하고 벌금형 등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자와의 합의사실과 처벌불원서는 검찰이나 법원 단계에서 중요한 양형 자료로 활용되어, 처벌 수위를 낮추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창세 김정묵 변호사 역시 "합의금은 민사상 피해배상이고, 벌금은 국가에 납부하는 형사처벌이므로 별개"라고 강조했다.
'상해 없음' 증명할 합의서, 경찰에 꼭 내야
변호사들은 A씨의 경우, 피해자와의 합의가 처벌 수위를 낮추는 것을 넘어 '상해 없음'을 입증해 도주치상 혐의 자체를 벗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선 합의서와 처벌불원서를 경찰에 제대로 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합의서에 '피해자가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호사 안영진 법률사무소의 안영진 변호사는 "피해자의 상해가 없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히 담은 합의서와 처벌불원서를 경찰에 제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합의서에는 현재까지 상해가 전혀 없고 진료를 받은 사실도 없다는 점을 사실대로 기재하라"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케이비 안진우 변호사는 "피해자가 조사관에게 직접 '상해가 없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진술해 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면서도, 진술 번복의 가능성을 막기 위해 서면으로 된 합의서와 처벌불원서를 함께 제출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A씨처럼 사고 사실을 몰랐고 다음 날 바로 자진 신고한 점 역시 도주의 고의가 없었음을 주장할 수 있는 유리한 사정으로 꼽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