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가 낙태 막는 거 아냐' 헌재 결정에 결정적 영향
'낙태죄가 낙태 막는 거 아냐' 헌재 결정에 결정적 영향
한국보건사회연구원 "OECD 국가 중 낙태죄 없앤 곳 낙태율 더 낮아"
'낙태 헌법불합치' 검토 헌법연구관 "OECD 통계 인용했어"

지난달 29일 낙태폐지 행위예술 중인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연합뉴스 김주형 기자(C)연합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인공임신중절률(낙태율) 통계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통계는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은 한국을 포함한 국가들의 낙태율이 폐지한 국가보다 오히려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공임신중절률(‰)이란 만15~44세 여성 1000명 당 인공임신중절 건수를 말한다.

이 통계에 따르면 OECD 36개 국가 중 미국과 독일 등 낙태를 전면 허용한 곳의 낙태율은 0.7~18.0‰(천분율)이다. 이중 한국(15.8)보다 낙태율이 높은 나라는 스웨덴(18.0), 에스토니아(17.0) 둘 뿐이다.(표 참조) 낙태죄를 묻지 않는 나라의 낙태율이 상대적으로 더 낮은 만큼 낙태행위를 형법으로 처벌할 이유가 마땅치 않은 셈이다.

한국은 산부의 낙태 사유로 ‘경제적 또는 사회적 사유’와 '본인 요청'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OECD 국가에서 이 둘을 모두 허용하는 국가의 수는 25개, 경제적·사회적 사유로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의 수는 29개다.
12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사건을 사전검토한 헌법연구관에 따르면 단순위헌 의견이 결정문 초안 40쪽에서 출처 없이 언급한 ‘실증적 결과’는 2011년도 2018년도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첨부된 OECD 회원국 통계다. 보건복지부는 이때 각각 연세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용역발주했다.

단순위헌 의견은 결정문 초안에서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여 낙태가 증가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자료를 찾기 어렵다”며 “오히려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 국가가 낙태를 처벌하는 국가에 비하여 낙태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다는 실증적 결과가 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헌법불합치 의견 역시 같은 취지로 “낙태죄와 관련한 수사 현실 역시 자기낙태죄 조항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며 2010년 대검찰청이 지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여성이 낙태 범죄로 기소된 경우가 연간 10건 이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헌재는 지난 11일 임산부에게 낙태 시술을 돕는 의사를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형법 270조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으므로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가 법률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다만 단순위헌 의견이 3명으로 위헌정족수 6명에는 3명이 부족해 바로 해당 법률의 효력을 없애지는 못했다.
결정문의 초안에 따르면 헌법불합치 의견과 단순위헌 의견이 공감대를 이룬 부분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은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인 관계’라는 전제다. 기존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에서 ‘자기결정권과 생명권은 대립 관계’라고 본 구도를 깨뜨린 것이다.
두 의견이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심사기준에서 공감대를 이룬 배경에는 이미 형법상의 해당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1953년 제정 당시 입법목적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