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병' 유치원에 법적책임 묻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그 유치원은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햄버거병' 유치원에 법적책임 묻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그 유치원은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지난 12일 시작된 식중독 증세⋯같은 유치원생 100여명으로 확산
일부는 햄버거병 증상으로 신장 투석까지⋯원인은 '오리무중'
역학조사 방해하고, 책임 회피에도⋯ 변호사들 "유치원 책임 묻기엔 넘어야 할 산 많아"

경기도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일명 '햄버거병'을 일으킬 수 있는 식중독이 집단 발병했다.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식중독에 걸렸다는 점에서, 유치원이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변호사들은 "유치원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셔터스톡⋅국민청원 홈페이지⋅편집=이지현 디자이너
경기도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일명 '햄버거병(용혈성요독증후군⋅HUS)'을 일으킬 수 있는 식중독이 집단 발병했다. 이 때문에 신장 투석을 받는 아이만 네 명. 이들은 만성신부전증으로 발전돼 평생 투석을 해야 할지 모르는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이곳에 다니는 167명의 원아 가운데 100명이 식중독에 걸렸다는 점에서, 유치원이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학부모는 유치원의 책임을 지적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국민청원 글도 올렸다. 해당 글은 올라간 지 이틀 만에 3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법적으로 따져봤을 때 학부모들이 유치원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유치원이 '무죄'를 주장할 방법이 여러 가지 있기 때문이다.
식중독 증세가 시작된 건 지난 12일. 7살 원아를 시작으로 다수의 원아가 복통과 혈변 등의 식중독 증세를 보였다. 당시 학부모들은 이 같은 집단감염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16일 한 병원에서 "같은 증세로 아이들이 입원했다"고 신고하면서, 해당 내용이 알려졌다.
아직 뚜렷한 원인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유치원이 원아에게 제공한 음식 일부를 없애는 바람에 보건 당국이 감염 경로를 알아내는 데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치원은 위생 사건에 대비해 원아들에게 제공한 음식 일부를 144시간 동안 보관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유치원은 이 일로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증거인멸로 볼 수 있진 않을까. 법무법인(유) 에이스의 옥민석 변호사는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경우에는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범죄 증거를 없애면, '증거인멸죄'에 해당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사건일 경우 이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
학부모들은 아이들 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셈이다.
아무런 잘못 없이 고통받는 원아와 학부모들. 하지만 유치원이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은 커, 앞으로 해결 과정이 난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법률 자문

① 아이들이 먹은 음식이 존재하지 않는 점
식중독에 걸렸을 때 관건은, '무엇을 먹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이번 사안의 경우 △유치원의 부실한 음식 관리와 △식중독균이 있는 음식 때문에, 원아들이 식중독에 걸렸다는 '인과관계'가 필요하다.
옥민석 변호사는 "음식물 등을 정해진 절차대로 마련했는지, 적절한 방법으로 보관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만약 유치원 측의 의무 위반이 인정된다면, 이로 인해 병이 유발됐는지 등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유치원이 음식을 없애는 바람에 이를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유치원이 의심되지만, '증거'가 사라졌으니 책임을 묻기 어렵다. 유치원 또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
법무법인 참진의 이홍걸 변호사는 "제공된 음식은 보통 먹어서 사라졌으므로, 제공되고 남은 음식을 조사해 간접적으로 그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이번 사안처럼) 그런 방법이 사라진 경우 법관의 자유심증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② 신장 투석의 경우 아이의 건강 상태 문제로 주장할 수 있다는 점
단순한 식중독 증세를 넘어 신장 투석까지 이어진 경우, 유치원은 원아가 평소에 앓던 질병을 원인으로 돌릴 수도 있다.
이홍걸 변호사는 "유치원은 어린이가 기존에 갖고 있었던 질병이, 손해가 확대되는 데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입증할 수 있다"며 "만약 유치원 측이 입증한다면 배상액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③ 재료 공급업체 잘못으로 주장할 수 있다는 점
유치원이 원아들이 먹는 음식을 업체를 통해 샀다면, 이 업체 책임으로 몰아갈 여지도 있다. 이홍걸 변호사는 "유치원에서 음식물을 직접 재배하고 공급하는 것이 아니므로, 공급업체가 있을 것"이라며 "유치원은 공급업체로 그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이 경우 유치원이 공급업체의 음식물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옥민석 변호사는 "음식물 사건의 경우 의무 위반과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손해배상소송에서 입증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음식물로 인한 신체적 피해의 경우,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경감하는 등의 입법을 통한 해결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26일 교육부는 이번 사안에 대해 "무엇보다 병원에서 힘들어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이번 사안에 대한 원인 규명을 위해 철저히 조사하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예방 관리 체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