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욕설인데 왜? '공연성'과 '혐오 표현'이 모욕죄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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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욕설인데 왜? '공연성'과 '혐오 표현'이 모욕죄를 가른다

2025. 11. 23 13:01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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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죄 성립요건 욕설보다 맥락이 중요하다

모욕죄는 욕설 수위로 정해지지 않는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인터넷 기사에 연예인을 비꼬는 댓글을 단 A씨, 단체 채팅방에서 조합장에게 원색적인 욕설을 퍼부은 B씨, 병원 로비에서 원장에게 소리를 지른 C씨.


누군가를 향해 날 선 공격성을 드러낸 이 세 사람의 운명은 법정에서 극명하게 엇갈렸다.


언뜻 보면 입에 담기도 힘든 험한 말을 쏟아낸 쪽이 더 큰 처벌을 받을 것 같지만, 법의 저울은 우리가 생각하는 '욕설의 수위'와는 다르게 기울었다.


최근 3년간 대법원이 내놓은 판결들은 모욕죄의 성립 여부가 단순히 '나쁜 말'을 했느냐에 달려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일상의 분노가 범죄가 되는 순간, 도대체 그 기준은 무엇일까

세 가지 장면, 엇갈린 판결


사건의 재료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툼과 비난이다.


첫 번째,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연예인 배수지 씨(수지) 기사 댓글란. A씨는 과거 배 씨의 열애설을 비꼬며 "그냥 국민호텔녀"라는 댓글을 남겼다. 기존의 '국민여동생'이라는 수식어를 비틀어 성적인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두 번째, 주택조합 내부 갈등이 터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조합원 B씨는 추진위원장을 향해 분노를 폭발시켰다. "도적X", "양두구육의 탈", "법의 심판을 통해 능지처참",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약"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글자만 봐도 살기가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세 번째, 병원 로비. 상담실에서 원장과 언성을 높이다 밖으로 나온 C씨는 "원장이 쓰레기네", "저 새끼 이러고 있는 거 다른 원장들도 손가락질하고 있다"며 소리를 질렀다. 당시 로비에는 접수대 직원들과 손님 1명이 앉아 있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법원은 A씨(국민호텔녀)와 C씨(병원 로비)에게는 유죄(모욕죄 성립)를 인정했다. 하지만 가장 거칠고 원색적인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이는 B씨(미친개)에게는 무죄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단 한 명이라도 들었다면"... 피할 수 없는 '전파 가능성'

C씨(병원 로비 사건)가 유죄를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공연성' 때문이었다. 공연성이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재판 과정에서 C씨는 "현장에 있던 간호사들은 원장의 직원이라 비밀을 지킬 것이고, 손님은 딱 한 명뿐이었다"며 공연성이 없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핵심은 '듣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말이 퍼질 가능성'이었다.


법원은 비록 한 사람에게 말했더라도 그 사람이 말을 옮길 가능성, 즉 '전파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이 충족된다고 봤다.


특히 병원 로비라는 개방된 공간에서, 업무상 비밀 유지 의무가 없는 손님이 듣고 있는 상황은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위험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보는 눈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말은 천리를 간다"는 법리가 적용된 셈이다.


혐오 표현은 '철퇴', 무례한 분노는 '표현의 자유'?

그렇다면 "국민호텔녀"는 유죄고, "미친개"는 무죄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법원은 '표현의 맥락'과 '성격'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대법원은 A씨의 "국민호텔녀" 댓글을 단순한 비판이 아닌 '여성 연예인을 성적 대상화하여 비하하는 혐오 표현'으로 규정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추어 청순한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이미지를 덧씌우고, 이를 통해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당한 비판의 범위를 벗어난 인격 모독으로,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는 영역이다.


반면, B씨의 "미친개", "도적X" 발언은 겉보기엔 훨씬 과격해 보이지만 법원의 해석은 달랐다. 법원은 이 발언이 주택조합 내부의 공적인 갈등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하고 저속한 표현이거나, 부정적 의견을 나타내면서 욕설을 섞은 경우라면 모욕죄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B씨의 발언은 상대방의 업무 처리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거칠게 표현한 것일 뿐, 인격을 허물어뜨릴 정도의 모멸적인 표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다소 무례하더라도 공적 사안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나온 감정 표출은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폭넓게 인정해 준 셈이다.


당신의 한 마디, '맥락'이 범죄를 가른다

최근 대법원 판례의 흐름을 종합하면, 모욕죄의 성립 요건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단순히 욕설이 섞였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받는 시대는 지났다.


법원은 갈등 상황에서의 우발적인 욕설이나 다소 무례한 표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들어 관대함을 보인다. 하지만 여성, 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가 담긴 표현이나 성적 대상화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라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또한, 아무리 사적인 분노라도 제3자가 들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공연성'의 덫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도 명확하다.


결국 내가 뱉은 말이 단순한 '무례'로 끝날지, 아니면 '범죄'가 되어 전과 기록으로 남을지는 내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그 말이 뱉어진 '장소'와 그 속에 담긴 '혐오의 유무'가 결정한다.


타인을 향한 손가락질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게 하려면, 입을 열기 전 상황과 맥락을 먼저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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