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지 기재” 네 글자에 전세금 증발 위기 ‘폐업’ 중개사에게 보상받는 법
“별지 기재” 네 글자에 전세금 증발 위기 ‘폐업’ 중개사에게 보상받는 법
구청 과태료 처분은 '결정적 증거'
전문가들 “중개사와 협회 공동소송이 최선”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제가 거짓말한다고요?” 선순위 보증금 ‘깜깜이’ 설명한 중개사의 적반하장이었다. 전세 보증금 전액을 날릴 위기에 처한 세입자 A씨는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되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책임 회피뿐이었다.
2022년 2월, 부푼 꿈을 안고 다가구주택 임대차 계약을 맺은 A씨의 비극은 거주하던 집이 강제경매에 넘어가면서 시작됐다.
법원으로부터 후순위 임차인이라 보증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A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뒤늦게 계약서를 다시 확인한 A씨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의 ‘선순위 임차보증금’ 항목이 구체적 액수 없이 ‘별지 기재’ 네 글자로만 적힌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해당 별지는 받은 적도 없었다. A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중개사는 “분명히 전달했다”며 발뺌했고, 몇 달간의 실랑이 끝에 A씨는 중개사를 경찰에 고소했다. 관할 구청은 중개사의 설명 의무 위반을 인정해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했지만, 그 사이 중개업소는 이미 폐업한 뒤였다.
구청 과태료 처분, 소송의 ‘스모킹 건’ 되나?
A씨의 사례는 공인중개사법 제25조가 규정한 ‘성실·정확 설명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경우다. 중개사는 계약 전 해당 건물의 권리관계(선순위 보증금, 근저당 등)를 명확히 확인하고 임차인에게 설명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법률 전문가들은 구청의 과태료 처분이 소송에서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유안의 조선규 변호사는 “행정청의 과태료 처분은 민사소송에서 중개사의 과실을 입증하는 매우 유리한 증거”라며 “중개사의 명백한 과실로 재산상 손해를 입었으므로 이를 배상받을 법적 권리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중개사는 폐업, 공제는 만료… 보상, 정말 끝일까?
가장 큰 문제는 보상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받아내느냐다. 중개사는 폐업했고, 계약 당시 받은 공제증서(부동산 중개사고 발생 시 손해를 보상해주는 보험)의 보증 기간마저 만료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길이 있다’고 단언한다. 핵심은 보상 청구 시점이 아닌, ‘중개 사고 발생 시점’이다. 법무법인 창경 김경수 변호사는 “손해배상 책임은 문제가 된 중개행위, 즉 계약이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며 “A씨의 계약일이 공제기간 안에 포함되므로,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보상을 청구할 자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개사가 현재 폐업했더라도, 사고 당시 가입했던 공제 효력은 유효하다는 뜻이다.
최선의 전략 ‘공동소송’, 그러나 100%는 없다?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공인중개사 개인과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공동 피고’로 묶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협회의 공제금 한도(통상 1억 원) 내에서 우선 배상받고, 이를 초과하는 손해는 중개사 개인의 재산을 상대로 청구하는 방식이다.
다만, 법원이 임차인의 과실도 일부 참작해 배상액을 깎는 ‘과실상계(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을 때 그 비율만큼 손해배상액에서 빼는 것)’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법무법인 에스엘 이성준 변호사는 “법원은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살피지 않은 임차인의 과실도 고려해 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며 “계약 전 본인이 어떤 주의를 기울였는지 잘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100% 배상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제2의 A씨’ 막으려면 계약 전 ‘필수 확인’ 체크리스트
A씨와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모든 세입자는 계약 전 몇 가지 사항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첫째, 등기부등본을 직접 발급받아 근저당 등 담보 대출 규모를 확인한다.
둘째, 다가구주택이라면 선순위 세입자들의 보증금 총액이 얼마인지 구체적인 목록을 요구해야 한다.
셋째,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별지 기재’와 같은 불분명한 표현 대신 정확한 금액이 적혔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언급된 모든 서류를 직접 받고 서명해야 한다.
작은 부주의가 전 재산을 잃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