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 정도는 수사기관이 발견했어야 하지 않나요?" 검찰 꾸짖은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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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 정도는 수사기관이 발견했어야 하지 않나요?" 검찰 꾸짖은 법원

2021. 10. 20 19:52 작성
박선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w.park@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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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1억 빼돌린 이모 A씨⋯횡령죄로 수차례 조사받았지만 매번 무혐의

수사기관에 1억 있는 것처럼 보이게⋯자기 집에서 위조 복사한 가짜 통장 사본 제출

10년 만에 법정 섰지만⋯횡령죄로는 처벌할 수 없었다

사고로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 남겨진 1억원. 가해자가 보내온 이 공탁금은 엄마의 목숨값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조카의 돈을 중간에서 가로챈 이모. 아이는 이 돈을 되찾으려 수없이 수사기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끝내 구제를 받지 못했다. /연합뉴스·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사고로 목숨을 잃은 엄마. 가해자는 합의금으로 법원 공탁금 2억원을 냈다. 피해자 유족이 이 공탁금을 받는다는 건, 엄마를 그렇게 만든 가해자를 법적으로 선처한다는 의미였다. 유족은 고민 끝에 공탁금을 수령하기로 했다.


하지만 유족은 이 돈을 구경조차 못했다. 갑자기 나타난 이모 A씨가 공탁금을 일방적으로 수령했기 때문이다. 유족 몰래 공탁금을 받아간 A씨는 불과 9개월 만에 엄마를 잃은 조카 몫의 1억원을 자신의 카드값 납부 등으로 탕진했다. 사람들 앞에선 '조카의 재산을 지켜주는 이모'처럼 행세하면서 말이다.


명백한 횡령이었지만, A씨에게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 신고가 늦었던 걸까? 아니었다. 피해자의 어린 자녀를 대신해서 남은 가족들이 A씨를 횡령 등으로 여러 차례 고소했지만, 수사기관의 무관심 때문에 A씨에게 죄값을 물리지 못했다.


동생 사망사건의 합의금 가져간 뒤⋯조카 몫 '1억' 자신이 홀랑 쓴 이모

조카 B씨(당시 11세)가 이모 A씨를 횡령죄로 고소한 건 지난 2012년 여름. 이미 A씨가 1억을 거의 다 사용한 뒤였다. A씨는 조사 받으러 오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은 뒤 '1억'이 아직 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로 했다. 범행을 감추려는 계획이었다.


수사기관을 속이겠다는 대담한 결심이었지만, 그 방식은 허술했다. 일단 A씨는 아들 명의로 된 통장 사본을 준비했다. 이 통장 잔액란에 기재된 금액은 477원. A씨는 컴퓨터를 이용해 '100,910,477'이라고 적힌 문서를 작성해 출력했다. 그런 뒤, 해당 숫자를 오려 477원이 기재된 잔액란 위에 붙였다. 경찰 등에는 이를 복사한 사본만을 증거로 제출했다.


이모는 조카의 돈을 모두 탕진하고도, 이처럼 허술한 통장 위조 방식으로 수사기관의 눈을 피해 갔다. /게티이미지코리아·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누가 봐도 허술하게 만들어진 이 증거는 놀랍게도 당시 수사기관을 속였다. 경찰은 A씨의 사본과 진술 등을 믿고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에서도 추가 수사 없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A씨의 진술과 사본 등의 증거가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이후 B씨 측은 지속적으로 수사기관에 이 문제를 호소했다. 이모 A씨를 상대로 취한 법적 조치의 종류만 6개. 횡령죄로 고소한 건 세 차례나 됐다.


① 횡령죄 고소 (2012년, 2014년, 2017년)

② 횡령죄 무혐의 처분 이후 항고 (2012년)

③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 (2012년)

④ 민사상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 (2016년)

⑤ 채권가압류 신청 (2016년)

⑥ 재산명시신청과 재산조회신청 (2014년)


하지만 도돌이표처럼 같은 일이 반복됐다. '혐의없음', '증거불충분', '항고 기각', '각하' 등. B씨 측의 호소는 묵살됐다.


이 모든 게 '가짜 통장 사본' 하나 때문이었다. A씨는 수사를 받을 때 마다, 자기 집에서 위조한 통장 사본을 제출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A씨에게 횡령죄를 물을 수 있는 시간인 '공소시효'도 지나버렸다.


하지만 A씨의 '가짜 통장 사본'이 영원히 통할 것이라고 여기는 건 무리였다. A씨의 범행은 결국 발각됐다. 약 10년 만에 검찰에서 A씨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확인한 것이다. 그렇게 A씨는 △사문서 변조 △변조사문서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조차 "충분히 조사했다면 증거 허위임을 발견했을 것"

지난해 8월, 인천지법 형사12단독 강산아 판사의 심리로 열린 1심. 재판 결과 A씨에겐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이때, 사문서 변조와 변조사문서행사에 대해서는 유죄로 봤지만 수사기관에 대한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는 무죄로 봤다.


그 근거로 강 판사는 판결문에 "수사기관이 충분한 조사를 통해서도 그 증거가 허위임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었다", "경찰 또는 검사의 수사 업무가 방해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야기됐다고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썼다. 즉, 제대로 봤다면 찾아낼 수 있었던 허위 사실을 모르고 넘긴 것은 수사기관의 책임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 밖에도 "A씨는 이 사건 범행으로 횡령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될 때까지 제대로 된 수사와 재판을 회피할 수 있었다"며 "(횡령에 대한) 형사처벌은 영영 문제 삼을 수 없게 됐다"고 답답함을 토로하면서 수사기관의 잘못도 상당 부분 다시 꼬집었다.


강산아 판사는 "(사본을) 자세히 살펴보면 글씨체나 크기가 조금씩 다르고 변조한 부분에 음영이 있다"며 "A씨가 1억을 보관하고 있는지 계좌 압수수색 절차를 통해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법원에 제때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A씨가 조카 B씨의 돈을 횡령했을 가능성을 의심해 볼만한 사정도 존재했다고 강 판사는 말했다. 앞서 조카 B씨 측이 민사소송을 통해 A씨가 돈을 보관하고 있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확보했던 점을 들었다. 강 판사는 "그럼에도 수사기관은 A씨가 제출한 자료만을 근거로 다시 불기소 처분을 했다"며 "만약 계좌내역 등을 확인했다면 A씨의 진술이 거짓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고 수사기관의 일 처리를 꾸짖었다.


이어 이모 A씨에 대해서도 "어린 자녀를 남기고 비명에 세상을 떠난 친동생의 형사사건 합의금을 임의로 모두 사용하고, 발각되지 않기 위해 수년에 걸쳐 대담한 범행을 저질렀다"며 "죄질이 불량하다"고 했다. 또한, ▲조카의 양육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점 ▲재판 당시까지도 1억을 돌려주지도 않은 점 ▲마치 자신이 조카의 재산을 정당하게 지켜주는 이모인 척 행세한 점은 불리한 양형 사유라고 짚었다.


결국 징역 2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 A씨. 하지만 끝까지 반성은 없었다.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를 하고,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갔다.


하지만 지난 3월, 대법원은 A씨의 상고를 기각했고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조카, 1억 못 받고 소송에 돈과 시간 쏟았는데⋯구제받을 방법 없나

결국 이모는 이렇게 형사처벌을 받게 됐다. 하지만 조카는 못 받은 돈을 포기해야 할까. 소송을 하느라 들인 시간과 노력도 무시하기 어렵다.


'법률사무소 수훈'의 박도민 변호사. /로톡DB

이에 대해 법률사무소 수훈의 박도민 변호사는 이모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구제받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소멸시효'가 있는데, 이에 따르면 조카가 이모의 불법행위(조카의 돈을 써 버린 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까지는 소송이 가능하다"고 했다.


막상 소송을 진행했을 때 이모가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다음 두 가지 경우에 비춰 해당 주장이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먼저 소멸시효의 요건 중 '이모의 불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에서 '안 날'이라는 시점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여기서 안 날은 이모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확정적으로 알게 된 것을 말하는데, 이번 판결로 알았다고 볼 수도 있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재판이 마무리된 지 3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소송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설령 소멸시효가 지났어도 예외적으로 소송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도 했다. 박 변호사는 "시효 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등 적극적인 교란 행위를 했다면 소멸시효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구체적으로 따져봐야겠지만) 이 사건의 경우 이모가 사문서 변조를 통해 조카의 권리행사를 현저히 곤란하게 했다고 방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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