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 이불 삼아 쪽잠...APEC 동원 경찰관 '노숙자 신세'
박스 이불 삼아 쪽잠...APEC 동원 경찰관 '노숙자 신세'
APEC 경찰 복지 참사

APEC 동원 경찰관들의 대기 시설 / 연합뉴스
지난 1일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폐막 후 역대급 후폭풍을 맞고 있다.
행사에 동원된 경찰관들이 '박스를 이불 삼아 쪽잠'을 자거나 '통유리 화장실' 모텔에 합숙하는 등 기본적인 복지조차 제공받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국가가 경찰공무원에게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복지와 안전 배려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직협)가 공개한 사진은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경주 지역 대기 장소에서 근무복 차림의 경찰관이 폐지 줍는 분에게 빌려온 박스를 이불처럼 덮고 잠을 자는 모습, 영화관 대형 스크린 앞에서 단체로 잠을 청하거나 복도에 모포 하나만을 깔고 쪽잠을 자는 모습 등이 포함됐다.
한 경찰관은 "모텔 화장실이 문이 없고 통유리로 돼 있었다"며 "룸메이트한테 못 보여주겠다. 감방도 칸막이는 있을 것"이라고 참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현재 직협은 11일부터 경찰청과 국회 앞에서 '경찰을 노숙자로 만든 APEC 행사 사진전'을 열겠다고 예고하며 경찰 지휘부에 전수조사, 사과, 재발방지 대책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직무 태만" 입증 시 국가배상 문 열린다: 경찰청의 법적 책임은?
APEC 동원 경찰관들이 겪은 사태는 단순한 행정 실수로 볼 수 없다. 법률 전문가들은 경찰청 및 관계 기관의 직무상 의무 위반이 명백하며, 이는 국가배상 책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국가가 경찰공무원에게 지는 의무
「경찰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 제3조는 국가의 책무를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국가는 경찰공무원이 직무수행에 전념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건안전 및 복지증진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또한 제9조는 비연고지 근무 경찰공무원에게 직원숙소를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숙소의 규모 및 시설기준은 경찰청장이 정하도록 하고 있다.
경찰청의 의무 위반 및 법적 쟁점
경찰청은 APEC에 대규모 경력을 동원하면서도 위 법령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 안전배려 및 복지증진 의무 위반: 박스를 이불 삼아 자게 하거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숙소를 배정한 것은 「경찰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 제3조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이는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인권존중 및 신의성실의 준칙을 지키지 않아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한 행위, 즉 직무 집행상 과실로 판단된다.
- 직원숙소 제공 의무 위반: 비연고지인 경주에 동원된 경찰관들에게 기본적인 프라이버시와 휴식권을 보장하지 못한 열악한 숙소를 제공한 것은 동법 제9조의 직원숙소 제공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본다.
- 국가배상 책임 성립 가능성: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 국가는 배상 책임이 있다.「경찰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은 경찰공무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법이므로, 경찰청의 의무 위반과 경찰관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 및 재산상 손해(사비 식사 비용 등)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경찰관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위자료 등)을 청구할 수 있는 구제 방안이 열리게 된다.
경찰 지휘부, 징계 피할 수 있을까? 재발 방지 위한 특단의 대책은?
이번 사태는 담당 공무원들의 징계 사유에도 해당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가공무원법」 제78조 제1항은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태만히 한 때를 징계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APEC 기획단, 경찰청, 경북경찰청 등 관계 공무원들은 「경찰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상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그 집행을 태만히 했으므로, 징계 요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직협이 요구한 직무 감사를 통한 전수조사는 이들을 징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는 절차가 될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인 구제 방안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다.
「경찰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 제5조는 경찰청장이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이 계획에는 근무여건 개선 및 복지시설 설치·운영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경찰청은 대규모 행사 동원 시 경찰관들의 숙소와 식사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를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등 법적 의무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시행계획을 즉각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경찰관들을 '노숙자 신세'로 만든 책임을 피하려면, 지휘부는 사과와 함께 실질적인 복지 혁신을 단행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