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찰 "n번방 수사로 바쁘니 기다려달라" 그렇게 특수강간 피해자의 시간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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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검찰 "n번방 수사로 바쁘니 기다려달라" 그렇게 특수강간 피해자의 시간은 멈췄다

2020. 10. 30 16:38 작성2020. 10. 30 16:56 수정
안세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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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지인 집에서 성폭행당한 피해자⋯DNA 등 증거 확실하지만

검찰로 넘어 간 지 반년도 더 넘었는데도⋯"n번방 때문에 사건 밀렸으니, 기다려달라"

피해자 대리 맡은 박원연 변호사 "이슈가 된 사건만 중요한 건 아니지 않느냐"

성폭행을 당해 신고를 한 A씨. 경찰에선 이미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재판 한번 열리지 않았다. 아니, 검찰의 기소조차 열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일까.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1년.


A씨가 "집단 성폭행범들을 처벌해달라"는 고소장을 낸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10월, A씨는 친구와 함께 평소 알던 남성들과 술을 마시다가, 이들 중 한 명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그해 가을을 지나 겨울⋅봄⋅여름, 그리고 다시 가을이 끝나가지만 재판은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증거가 부족했을까. 아니다. 피해자는 사건 직후 속옷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겼고, 조사 결과 DNA가 검출됐다. 피해자가 한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역시 '진실'로 나왔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DNA 검사와 거짓말탐지기 조사 등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


초기수사를 맡은 경찰은 "추가 조사가 필요 없을 것 같다"며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그런데 사건은 검찰로 넘어간 지 7개월이 넘도록 서울중앙지검 모 검사실 캐비넷에 잠들어 있다.


A씨 측이 하릴없이 기다리고만 있던 것도 아니었다. 지난 6월부터 수차례 전화를 걸어 재촉도 해보고, 수사 촉구서까지 냈다.


"n번방 사건 수사 때문에 사건이 밀리고 있다. 기다려달라."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담당 검사실 답변은 같았다.


격무에 시달리는 서울중앙지검 이해는 되지만⋯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법률사무소 로베리의 박원연 변호사. /로톡뉴스 DB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법률사무소 로베리의 박원연 변호사. /로톡뉴스 DB

이 사건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박원연 변호사(법률사무소 로베리)는 이 대답을 듣고 '특수강간 사건도 n번방 사건만큼 중요합니다'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고 회상했다. 박 변호사는 "이런 수사 지연은 신속⋅정확한 수사를 받을 국민의 기본권 침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진지한 문제 제기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담당 검사 개인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자정 너머까지 늘 불 켜져 있는 서울중앙지검 검사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검사 개인의 일탈이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오히려 "실제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걸 이해한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매년 수십 건의 형사 사건을 맡고있는 경험상 "이 사건만 특별하게 지연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구체적으로 "체감상 최근 5년간 서울중앙지검에서 평균 4개월 정도(송치 이후 기소까지)가 걸렸다면, n번방 사건을 기점으로 지금은 7개월 이상이 소요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사건만 문제가 아니라는 게 아니라, 만성적으로 사건 처리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사건이 지연되는 만큼, 피해자가 받는 고통은 커지고 있다. 비단 A씨 한 명의 일은 아니다.


박원연 변호사 "검사 수를 늘릴 수 없다면, 수사관이라도 늘려야"

박 변호사는 이 같은 원인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검찰의 수사 인력 자체가 부족하다"며 특히 "검사를 늘리기 어렵다면, 검찰 수사관이라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통 검사실은 1명의 검사와 1명의 실무관, 1~2명의 수사관 등 3~4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서울재경지검 등 만성적으로 4개월 이상이 지연되는 곳이 있다면, 수사관을 2배 이상 더 늘려야 한다"고 박 변호사는 강조했다. 그게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했다.


검사의 채용 방식은 법령으로 정해져 있다. 검사정원법 시행령상 전국 검사는 2292명(2020년 9월 기준)을 넘을 수 없다. 이를 개정되지 않는 한 충원은 불법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당장 늘릴 수 있는 수사관이라도 늘려야 한다는 게 박 변호사의 의견이다.


법무부 장관 "수사관 과다 인력 조절하겠다" 발언에 '깜짝'

"검찰 수사관의 신규채용을 중단하는 방법으로 과다 인력을 조절하겠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2020.9.1)


지난 9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밝힌 내용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가 줄어든 부분을 반영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이 소식을 접한 박 변호사는 "두 눈을 의심했다"며 "현장에서 뛰고 있는 변호사들의 입장을 들은 적이 있는 것인지 걱정했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도 피해자는 속을 태우고 있다"며 "물론 전체 검찰청을 기준으로 보면 다소 인원이 많을 수 있겠지만, 서울중앙지검 등 사건이 몰린 곳에 대한 고려도 없이 막연하게 '많다'고 한 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인 인원 배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동안, 검찰은 '기다려달라'는 답변만을 반복했다"고 박 변호사는 말했다.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피해자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동안, 검찰은 '기다려달라'는 답변만을 반복했다"고 박 변호사는 말했다.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하루하루 피 말리는 고통 겪는 피해자 "언제 그 사람들 처벌되나요?"

"피해자가 1년을 기다리는 동안 몇 번이고 '언제 그 나쁜 놈들 처벌되느냐'고 물었다"고 박 변호사는 전했다. 그때마다 "피해자가 변호사를 잘못 만나 이렇게 된 것인지 자괴감이 들 때도 많았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동안, 검찰은 '기다려달라'는 답변만을 반복했다. 물론 n번방 사건도 중요하지만, 언론에 이슈가 된 사건만 중요한 건 아니지 않느냐."


A씨 외 수많은 피해자 입장에서 검찰의 수사 인력은 '과다'한 게 아니라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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