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 울리는 사이렌 딜레마…법은 "켜라"는데 주민은 "시끄럽다"
구급대원 울리는 사이렌 딜레마…법은 "켜라"는데 주민은 "시끄럽다"
"시끄러우니 끄고 들어와라" 병원조차 민원 눈치
법적 의무인 사이렌, 현실에선 '소음 공해' 취급
구급대원 이중고

병원 진입 시 사이렌을 자제해 달라는 민원이 이어지며, 구급대원들이 법적 의무와 민원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 드러났다. 사진은 지난 8월 서울 반포대교 인근 화재에 구급차가 출동한 모습. /연합뉴스
생명을 살리는 골든타임을 위한 절박한 신호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소음일 뿐이었다. 최근 부산의 한 대학병원이 인근 주민들의 민원을 이유로 구급대원들에게 "진입 시 사이렌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는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유승민 작가는 "취재 결과, 구급대원들이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순간부터 사이렌을 켜도 욕을 먹고, 꺼도 욕을 먹는 상황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법은 "켜라"는데 현실은 "꺼라"… 도로 위 '샌드위치' 신세
현행 도로교통법상 구급차와 같은 긴급자동차는 사이렌을 울리거나 경광등을 켜야만 '긴급자동차 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다. 신호 위반이나 속도위반, 앞지르기 등이 허용되는 법적 보호막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법전과 달랐다. 유 작가는 "대부분의 구급대원이 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아닌 이상 병원 진입로 등에서는 사이렌을 줄이거나 끈다"고 설명했다. 민원 때문이다.
문제는 사이렌을 끄는 순간, 도로 위의 '모세의 기적'도 사라진다는 점이다. 운전자들이 "저 차에는 응급환자가 없구나"라고 판단해 길을 비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사이렌을 켜면? 어김없이 "시끄럽다"는 민원이 빗발친다. 구급대원들은 법적 의무와 시민들의 짜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강요받고 있다.
현직 구급대원의 호소… "환자마저 '조용히 와 달라' 요청"
현장의 고충은 상상 이상이었다. 김성현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소방지부 구급국장은 인터뷰에서 "출동하다 보면 본서로부터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김 국장은 "민원 때문에 소리를 줄이면, 이번엔 환자분들이 '왜 우리는 사이렌 안 켜고 가느냐'고 항의한다. 그래서 다시 켜면 또 주변에서 시끄럽다고 신고가 들어온다. 계속 이런 식이라 항상 눈치를 보며 운전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환자가 119에 신고할 때부터 "올 때 사이렌 좀 끄고 와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유 작가는 "이런 요청을 받으면 구급대원 입장에서는 '정말 응급한 상황이 맞나' 의심하게 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불빛도 눈부시다"… 소리 없는 아우성
소리뿐만이 아니다. 밤에는 경광등 불빛조차 민원 대상이 된다. 김성현 국장은 "새벽 아파트 단지에 출동해 1층에서 대기하며 경광등을 켜놓으면, 관리실이나 주민들이 '번쩍거려서 눈 부시니 꺼달라'고 항의한다"고 전했다.
그는 "저희는 현장에서 싸울 시간도 없고 환자를 이송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며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