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압박한 남편·남자친구, 형사처벌 피해도 민사 책임은 남는다
낙태 압박한 남편·남자친구, 형사처벌 피해도 민사 책임은 남는다
구체적 협박 없으면 강요죄 성립 어렵다
하지만 민사 손해배상은 다른 이야기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임신이라는 축복받아야 할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협박과 압박 수단으로, 때로는 지옥 같은 고통으로 변하기도 한다.
유명 축구선수의 아이를 가졌다고 속여 돈을 뜯어내려 했던 여성의 사건부터, 성별을 이유로 낙태를 강요하는 남편,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연인까지.
지극히 사적인 생명의 영역이 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어떻게 멍들고 있는지, 26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서 로엘 법무법인 임흥준 변호사가 파헤쳤다.
“아들이면 지우고 딸 낳자”… 잔인한 남편, 처벌 가능할까?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충격적인 사연이 올라왔다. 남편과 아이 하나만 낳기로 합의했는데, 딸을 원했던 남편이 아내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임을 알자 "아이를 지우자"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시어머니마저 "나도 과거에 두 번 낙태했는데 자궁 건강엔 문제없었다"며 며느리를 도리어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도덕적으로는 지탄받아 마땅한 이 상황, 과연 법의 심판대에 올릴 수 있을까. 임흥준 변호사는 현실적인 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임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지우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거나 "생활비를 끊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해악을 고지하지 않는 이상, 단순한 제안이나 설득 수준으로는 강요죄 처벌이 매우 어렵다.
다만 형사처벌을 피하더라도 가정을 유지하기는 힘들 수 있다. 임 변호사는 "배우자로서의 신뢰와 존중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로 볼 수 있어 혼인 파탄 원인으로 인정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짚었다.

기적 같은 임신에 “책임 못 져”… 돌변한 남자친구의 가스라이팅
연인 사이에서도 비슷한 비극이 발생한다. 자궁 건강이 좋지 않아 임신이 어려웠던 A씨. "임신하면 결혼하자"던 남자친구의 말을 믿었고 기적처럼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남성은 "책임 못 진다"며 수술을 압박했다. 병원조차 "이번 임신은 기적이며 수술 시 향후 임신이 어렵다"고 만류했지만, 남성의 강요에 결국 A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더 큰 상처는 수술 직후 돌아온 남성의 말이었다. "결국 선택은 네가 한 것."
이 억울한 사연 역시, 남성이 폭로 등 구체적인 협박을 하지 않았다면 형사상 강요죄로 엮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억울함을 풀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임흥준 변호사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는 충분히 가능하다"며, 남성의 행위가 A씨의 헌법상 기본권인 임신 유지 및 출산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설명했다.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증거 수집이 필수다. 임 변호사가 강조한 핵심 증거 자료는 다음과 같다.
- 남성의 낙태 요구가 담긴 카카오톡 대화나 문자
- 상대방의 압박 내용이 담긴 통화 녹음
- 수술 전후 병원 진료 기록 및 의사 소견서
- 정신적 피해를 입증할 정신과 진료 기록
- 수술비 지급 내역
임 변호사는 "남성 입장에서는 '결국 선택은 네가 한 것'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속적인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사실상 선택의 자유가 제한됐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