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영화관과 5년 넘게 싸우는 김재왕 변호사 "장애인 위한 영화 상영, 손해 아닌 편견"
대형 영화관과 5년 넘게 싸우는 김재왕 변호사 "장애인 위한 영화 상영, 손해 아닌 편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
국내 1호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말하는 영화와 일상의 연결고리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 영화를 상영하는 일이 '손해'라고 주장하는 영화관 사업자들을 향해 김재왕 변호사는 이렇게 되물었다. "장애인을 '소비자'로 바꿔서 읽어보세요. 영화관을 찾으려는 새로운 소비자가 늘어나는 일인데, 왜 안 해야 할까요?" /강선민 기자
지난 2016년 배우 공유, 정유미, 마동석 주연의 영화 '부산행'은 누적 관객 1157만명을 동원하며 한국판 좀비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 전국 영화관에 '부산행'이 상영된 횟수만 15만 1511회였고, 이 영화는 개봉 20여 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부산행'은 장애인에게 화면해설과 자막 등을 제공하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영화로도 동시 상영돼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같은 시기 배리어 프리 영화로 '부산행'을 볼 수 있었던 기회는 전국에 걸쳐 단 21회뿐이었다. 총 상영 횟수의 '0.01%' 수준. 그마저 화요일 오후 2시 같이 애매한 평일 낮 시간대에 끼워 넣듯 영화 상영이 이뤄졌다.
이처럼 관행적인 차별에 제동이 걸렸다. 장애인도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에 사랑하는 이들과 영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보편타당한 명제를 확인하기 위한 재판이 시작됐다. 그 중심에 김재왕 변호사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이하 희망법)이 있다.
"1심 소송이 시작된 게 지난 2016년입니다. 어느덧 햇수로 6년이 흘렀고 아직 재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항소심(2심)이 끝났고 곧 대법원 심리를 앞두고 있어요.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도 영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이뤄진 건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일이에요. 그런데도 최근에야 소송이 제기된 건 그만큼 법적 근거도 뒤늦게 마련됐기 때문이죠.
지난 2007년 비로소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지만, 그로부터 8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300석 이상 규모의 영화관을 운영하는 문화예술 사업자가 장애인에게 편의제공을 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2015년 4월 11일부터 적용 됐으니까요. 하지만 영화관 운영사들은 법적 의무가 생긴 이후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이번 차별구제 청구소송으로 이어지게 된 겁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영화관 측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했다. 그러나 국내 굴지의 영화관 운영사들은 "장애인 아닌 사람의 영화 관람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며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자 입장에선 곤란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특별한 재판이 열렸다. 김재왕 변호사를 비롯해 장애인 측 대리를 맡은 변호사단은 재판을 맡은 법관들을 직접 영화관에 앉혔다. 정말 다른 관객의 영화 관람을 방해하는지 실증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후 법원에선 다음과 같은 판결들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2017.12.7 선고 "장애인 위한 화면해설과 자막, 수신기기 등 편의제공 해야"
서울고법, 2021.11.25 선고 "배리어 프리 영화 상영 횟수 전체 3%로" "주말 포함해 상영할 것"
"소송을 함께 이끌었던 분들 중 법무법인 지평의 임성택 변호사님이 낸 아이디어입니다. 임 변호사님께서 공익 소송 경험이 많으셔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셨어요. 자막이 재생되는 스마트 안경이나 스마트폰 앱 같은 '폐쇄형 보조기기'가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판사들이 직접 체험해보는게 좋겠다고 의견을 냈죠. 재판정에서 법리만 가지고 다툴 때 하고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최근 흥행 중인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법정 밖에서 현장검증을 하는 법조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편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극적인 연출처럼 보였지만, 현실 재판에서도 더 나은 변론을 위해 기꺼이 현장검증을 시도하는 변호사들이 존재했다.

"사업자가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법'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장애인용 화면해설이나 자막을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비가 없다고, 이를 구비하는 일도 과도한 부담이라고 주장하고 있고요.
그런데, 법적 의무나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 떠나서 장애인을 '소비자'로 바꿔서 읽으면 안 할 이유가 없어요.
장애인이 영화관에 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말 그대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 같은 경우는 영화관 사업자들이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자꾸 줄어드는데, 어떻게 하면 소비층을 늘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배리어 프리 영화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반대로 묻고 싶어요. 시장에 새로운 소비자가 늘어나는 일인데 왜 안 해야 할까요?"
지난 2016년, 배리어 프리 방식으로 영화 '부산행'을 본 관객은 총 2267명이었다. 전국 영화관에서 단 21회밖에 상영되지 않았지만, 회당 100명 넘는 관객이 영화관을 찾은 셈이다. 김재왕 변호사는 이 같은 현실에 주목했다. 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막는 건 예산이나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그들을 보통의 소비자와 다르게 여기는 편견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인생 영화라고 하기는 거창하지만, 영화 '슈퍼맨2'를 참 좋아했어요. 제가 초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무렵부터 맨날 그 영화를 녹화해두고 돌려봤던 것 같아요. 너무 어렸을 때라서 왜 그 영화를 좋아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요. '시네마천국'이나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도 참 좋았죠.

최근 영화로는 '기생충'이 기억에 남아요. 아내와 함께 영화관에서 가서 일반 영화로 봤는데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면 아내가 자체 화면해설을 해줬거든요. 극 중에서 배우 이선균이 송강호에게서 냄새가 난다며 코를 틀어막는다든지, 기우네 가족(최우식 분)이 아주 긴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 같은 거요. '끝없이 긴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에서 영화 속 장면을 그려보기도 했어요."
"영화 '기생충'하고 연결되는 이야기인데요. 영화가 단순히 영화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생충이 개봉한 지난 2019년은 이 영화를 안 보면 대화에 끼지를 못했어요. 당시에 사람들이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대사를 일상 곳곳에서 두루 썼는데, 영화를 안 보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대화의 맥락 자체를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 순간마다 이 사회에서 소외됐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거예요.
결국 가장 큰 문제는 한마디로 정의됩니다. 분명히 같이 살고 있는데, 장애인은 이 사회에 없는 것처럼 대우받는다 라는 사실입니다."
"장애인 인권과 차별을 둘러싼 이슈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짚기 어려울 정도예요. 교육권, 이동권, 직업 선택의 자유처럼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이 공공연한 차별 속에서 침해 받고 있어요. 우리 사회에선 장애인이 사회 어딘가에 접근하는 자체에 큰 제약이 뒤따릅니다. 어떠한 권리를 향유하기 위한 첫 단계부터 가로막히는 거죠. 이런 차별들이 쌓여서 기본권 침해로 이어지는 거고요.
저는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지금 많은 분들이 누리는 일상 속 편의는 어쩌면 장애인들이 일방적으로 양보한 대가라는 것을요. 예를 들어, 우리 사회는 누구나 탈 수 있는 저상버스 1대 대신 그보다 저렴한 계단형 버스 2대를 도입해 왔어요. 그 결과 장애가 없는 많은 시민이 안정적이고 신속하게 교통 편의를 누리는 동안 누군가는 자신이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됐어요. 이러한 차별이 당연한 일상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계기는 남들과 비슷해요. 회사에 다니다 '이직 고민'을 하면서 로스쿨 진학을 생각하게 됐죠. 로스쿨이 새로 생기는 데 장애가 있으면 특별 전형에 도전할 수 있다더라, 1기로 입학하면 학교 측에서도 교육부 평가를 고려해 신경을 많이 쓸 거다, 이런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하기도 했고요(웃음).
또 변호사가 되면 공적 영역으로 취업하기에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요. 제가 로스쿨에 들어갈 때가 서른 초반이었는데 누구나 그 시기엔 커리어 고민이 가장 많을 때잖아요."
"학부 때는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말씀드리기 쑥스럽고요. 로스쿨에 들어간 후로는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젊은 동기들은 막 치고 올라오는데' '나는 로스쿨 졸업하면 30대 중반인데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뭐라도 해야지' 이런 절박함이요(웃음).
게다가 제가 로스쿨에 들어갈 때 경쟁률이 10대 1이었거든요. 결국 저 때문에 누군가는 떨어졌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정말 미안하죠. 제가 지원을 안 했으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왔을 텐데, 그런 거 생각해서라도 잘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기본적으로 눈이 안 보이다 보니까, 남들처럼 중요한 부분에 동그라미를 친다거나 형광펜으로 체크한다거나 이런 게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만의 공부 파일을 만들고, 중요한 부분들은 따로 발췌본을 만들어가면서 계속 듣고 외우고 그랬던 것 같아요. 공부 노하우라기보단, 제가 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능한 걸 계속했던 겁니다."
"저와 함께 활동하는 분들이 저를 신뢰한다는 걸 느낄 때 보람을 느꼈어요. 인간적으로 든든함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참 뿌듯하더라고요. 제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힘이 되는 존재라는 거니까요.
다른 하나는 순수하게 변호사로서의 측면인데요. 재판에서 나의 독자적인 주장이 통하고, 판결에 받아들여질 때인 것 같아요. 이번 소송에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을 보면, 마치 '300석' 이상인 상영관만 배리어 프리 영화를 상영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읽힐 여지가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상위 법령이나 입법 취지를 모두 통틀어보면 300석 이상의 상영관을 운영하는 모든 영화관 사업자에게 의무를 부여한 걸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고, 이게 통했습니다. 이런 부분은 활동가들의 운동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법리 해석의 문제니까 "내가 뭔가 기여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죠. 그 원동력으로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갈 겁니다."
편집자 주
'희망법'은 지난 2012년 2월 창립한 비영리 전업 공익인권변호사 단체다. 활동가를 자처하는 변호사들이 모여 10년간 다양한 공익·인권 소송을 수행했다. 희망법은 우리 법이 보호하는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고, 때로는 사회 변화를 위해 법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대표 소송으론 성기 성형 없는 남성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신청 공동대리(2013, 서울서부지법 인용 결정), 이른바 '염전 노예' 국가배상소송 공동 대리(2019, 대법원 승소), 낙태죄 헌법소원 공동 대리(2019, 헌법불합치 결정) 등이 있다. 희망법은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법률 지원과 연대를 계속해갈 예정이다.
이 기사는 로톡뉴스의 윤리강령에 부합하는 사실 확인을 거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