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응급실 문 잠그는 이유…살리려다 실패하면 '감옥', 거부하면 '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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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응급실 문 잠그는 이유…살리려다 실패하면 '감옥', 거부하면 '벌금'

2025. 12. 02 16:19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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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뺑뺑이 방지법' 통과됐지만

현장은 여전히 "최종 처치 불가하면 수용 못 해"

사진은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이렌 소리는 1시간 동안이나 도로 위를 맴돌았다. 지난 10월 20일 부산, 경련 증세로 쓰러진 고등학생 A군은 119 구급차에 실려 14곳의 병원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이유는 "소아 신경과 진료 불가". 15번째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A군은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하루 평균 3명, 지난 1년 간 20번 이상 거절당한 응급환자만 1,100명이 넘는다. 국회가 부랴부랴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을 통과시켰지만, 법조계와 의료 현장의 시선은 여전히 엇갈린다. 1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 출연한 박민희 변호사(로엘 법무법인)은 이 비극의 법적 원인을 해부했다.


"배후 진료 불가"는 정당한 거부 사유인가

현행 응급의료법 제48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원칙적으로는 배후 진료(수술 등 최종 처치)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는 거부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법전과 달랐다. 박민희 변호사는 "응급처치는 했더라도 최종 처치가 불가능해 환자가 사망할 경우, 의료진은 법적 리스크를 우려해 수용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병원은 환자 측에 "최종 처치가 안 돼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에 동의해야 수용하겠다"고 역제안을 하기도 한다.


법원이 인정하는 정당한 사유는 ▲병상 부족 ▲전문의 부재 ▲위중한 환자 처치 중일 때 등 객관적으로 수용이 불가능한 경우로 한정된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환자가 이를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환자가 사망해도 의사는 '벌금형'인 이유

2019년 10월 발생한 4세 김동희 군 사건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당시 양산부산대병원 당직 의사는 "심폐소생 중인 환자가 있다"며 진료를 거부했지만, 수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동희 군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재판부는 해당 의사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아이가 사망했는데 고작 벌금형이라니, 국민 법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박 변호사는 "법원이 진료 거부 행위 자체는 유죄로 봤지만, 의사의 거부와 아동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백히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는 무죄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진료를 거부하지 않았더라도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살인이나 치사에 대한 책임은 묻지 못한 것이다.


받아서 죽으면 금고형, 거부하면 벌금형

가장 뼈아픈 대목은 현행 법체계가 역설적으로 '진료 거부'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박 변호사는 의료진의 방어적 진료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환자를 수용했다가 치료 실패로 사망하면 업무상 과실치사로 금고형 등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아예 수용을 거부하면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비교적 가벼운 벌금형에 그친다."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를 살리려다 전과자가 되느니,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진료를 거부하는 것이 법적으로 안전한 선택지가 되는 셈이다. 이는 119 구급대원들도 마찬가지다. 이송 중 환자가 사망할 경우 모든 책임이 전가될 수 있어, 방어 차원에서 보호자 동승을 강력히 요구하는 실정이다.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 무엇이 달라지나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응급의료법이 개정됐다. 핵심은 정보의 투명화다.


이제 응급의료기관은 수용 능력과 거부 사유를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의무적으로 보고하고 공개해야 한다. 박 변호사는 "과거엔 병원이 '자리가 없다'고 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보고된 정보와 실제 상황이 다를 경우 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국회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고의나 중과실로 진료를 거부해 환자에게 피해를 준 경우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도 논의 중이다.


법은 강화되었지만, 생명을 다루는 현장의 딜레마는 여전하다.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구조와, 환자를 길 위에서 떠나보내는 비극 사이. 우리 사회는 아직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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