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 횟수 456회, 283회, 248회였지만…세 사람 모두 실형 피한 이유
불법촬영 횟수 456회, 283회, 248회였지만…세 사람 모두 실형 피한 이유

총 987회. 불과 3명이 저지른 불법촬영 범행 횟수를 더했더니, 1000회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실형 선고를 받지 않았다. /연합뉴스·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A씨는 지하철 등에서 여성의 신체를 총 456회 불법촬영했다. B씨도 불법촬영 범행을 총 283회 저질렀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고있을 때도 범행을 이어갔다. C씨의 불법촬영 범행 횟수 역시 총 248회에 이르렀다.
총 987회. 불과 3명이 저지른 불법촬영 범행 횟수를 더했더니, 1000회에 이르렀다. 아주 오랫동안 들키지 않았다가 한꺼번에 처벌된 것도 아니었다. 짧게는 6개월, 길어도 1년 안에 저지른 범행 횟수가 수백회에 달 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건 이상의 불법촬영 범행을 저지른 셈이었다.
하지만 A씨도, B씨도, C씨도, 그 누구도 실형 선고를 받지 않았다. 법원은 집행유예로 이들을 선처하며 다음과 같은 양형사유를 들었다.
"다만 촬영물을 유포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세 사람의 선고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A씨 :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서울남부지법, 2021.12.24)
B씨 :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서울남부지법, 2021.12.24)
C씨 :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2021.6.10)

성폭력 사건에서 처벌 수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는 '피해자와 합의했는지' 여부다. 하지만 세 사람은 단 한 명의 피해자와도 합의하지 못 했다. 정확히 말하면, 할 수가 없었다. 불법촬영을 한 그들 역시 피해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지하철 등에서 우연히 마주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대상으로 몰래 범행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거의 모든 피해자들은 자신이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 했다. 이는 재판 결과 유죄가 확정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판결문 뒷부분에 첨부된 범죄일람표엔 다음과 같은 식으로 기재돼 있었다.
'피해자 : 성명 불상(不詳), 나이 불상, 여성'
'범행 수법 : 무음어플 카메라 기능을 이용해 피해자의 치마 속 등을 촬영'
또한 법원은 세 사람의 신상정보 공개⋅고지명령도 모두 면제해줬다. 각 재판부는 "해당 명령을 발동해선 안 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해당 명령으로 피고인들이 입을 불이익 등에 비해, 성폭력범죄의 예방 효과 등이 적어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피해자들과 합의하지도 못한 이들을 법원이 선처한 이유는 어째서였을까.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초범"이라는 흔한 사유 외에도 눈에 띄는 선처 사유가 하나 있었다.

"촬영물을 유포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로톡뉴스가 확인한 결과 이는 세 사람의 판결문에만 등장한 선처 사유가 아니었다. 대법원에서 공개한 확정 판결문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불법촬영 등으로 처벌이 이뤄진 판결은 확인 한 것만 77건이었다. 이중 21건의 판결문에서 해당 선처 사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법조계 일각에선 "유포하지 않았다"는 걸 선처 사유로 제시하는 것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이 나오고 있다. 우리 법은 엄연히 '불법촬영'과 '반포(배포)'를 각각의 범죄 행위로 구별하고, 처벌하고 있기 때문. 그런데도 위와같은 식으로 선처하는 건 "성추행을 했지만, 성폭행을 한 건 아니므로 선처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법률 자문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법 전문인 추선희 변호사(법무법인 세창)는 "성폭력처벌법은 지난 2018년부터 불법촬영과 반포를 각각 나누어 처벌하도록 개정됐다"며 "현재 법이 바뀌었는데도 위와같이 반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법촬영범을 선처하는 건 개정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존 판결문에서 쓰였던 해당 양형 사유를 참고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법 전문인 이재용 변호사(JY 법률사무소)의 의견도 비슷했다. "실무적으로 확실히 불법촬영물을 유포했는지 여부가 불법촬영죄의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식으로 선처가 이뤄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며 "유포했다면 가중 처벌사유가 될 순 있어도, 유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처 사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2022년 02월 11일 네이버 로톡뉴스 프리미엄에 먼저 발행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