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75년 만에 뒤집힌 ‘미군정 포고령’… 학살 피해자 무죄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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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75년 만에 뒤집힌 ‘미군정 포고령’… 학살 피해자 무죄 확정

2025. 10. 29 10:14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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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또는 타 형벌'로 불명확했던 '맥아더 포고령'

재심 재판부가 전격 무효 선언!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이 과거 국가보안법 및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2호(이하 '포고 제2호') 위반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피고인 A씨(당시 31세, 故 심상직)에 대한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청구인 B씨(피고인의 자녀)의 청구로 열린 이번 재판은 1950년 4월 18일 선고된 징역 1년 6개월의 유죄 판결이 있은 지 75년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재판부는 포고 제2호가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위헌 무효’ 법령이라고 판단하며 사법적 판단의 근거를 흔든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75년의 침묵을 깬 재심 청구의 배경

피고인 A는 1949년 3월 20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며, 1950년 4월 18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국가보안법 및 포고 제2호 위반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그 무렵 확정되었다. A씨는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7월에서 8월경, 징역형 복역 중 마산지역 미 육군 헌병대에 이관된 뒤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사건의 진실은 2023년 2월 14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을 통해 재조명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재심 청구인 B씨는 2024년 1월 17일 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2025년 2월 18일 재심사유를 인정하며 재심개시결정을 확정했다.


죄형법정주의의 칼날을 벗어난 '미군정 포고령 제2호'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제1형사부는 재심 심판 절차에서 재심대상판결의 공소사실을 복원하지 못했음을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유죄의 근거가 되었던 '포고 제2호 위반의 점'에 대해 결정적인 법리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포고 제2호가 그 내용 자체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며 추상적이어서 통상의 판단능력을 가진 국민이 금지되는 행위를 예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위반행위에 대한 형벌이 ‘사형 또는 타 형벌’로 되어 있어 형벌의 종류조차 가늠할 수 없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대한민국헌법이 신체의 자유와 죄형법정주의를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포고 제2호는 헌법에 저촉되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위헌 무효인 법령'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중 포고 제2호 위반 부분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의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증거 불충분' 무죄

한편,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에 대해서는 재심 심판 절차에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만한 소송기록이나 증거가 전혀 발견되거나 제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재판부는 재심 절차 역시 검사에게 입증책임이 있으며, 유죄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는 확고한 법리에 따라, 공소사실을 입증할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여 역시 무죄가 선고되었다.


결론: 75년 만에 바로 선 사법 정의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은 피고인 A에 대한 공소사실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 및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무죄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무분별하게 적용되었던 법령의 위헌성을 재확인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명예를 75년 만에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깊다.


재판부는 한지형(재판장), 손고은, 김도윤 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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