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점 가능' 믿었는데 이제와서 나가라니… 관리소장의 말 바꾸기, '권리남용'으로 막아라
'입점 가능' 믿었는데 이제와서 나가라니… 관리소장의 말 바꾸기, '권리남용'으로 막아라
상가 동종업종 제한, '알고도 묵인'했다면?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인테리어 공사까지 다 끝냈는데, 이제 와서 동종업종이라 못 들어온다니요.
프랜차이즈 음식점 개업을 앞두고 상가 관리규약의 '동종업종 제한' 조항을 뒤늦게 통보받은 한 자영업자 A씨의 이야기다. 수천만 원을 들인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닫을 위기에 처했다.
A씨의 꿈이 부풀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말이었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연계된 중개법인을 통해 한 집합건물 상가를 추천받았다.
문제는 해당 건물에 이미 동종업종의 다른 프랜차이즈가 영업 중이었다는 점. A씨 측은 계약에 앞서 중개사와 함께 관리사무소에 문의했고, "입점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 말을 믿은 A씨는 9월 10일부터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갔다. 약 한 달간 수천만 원을 쏟아부어 점포를 꾸몄다. 하지만 10월 2일 공사가 끝나고 며칠 뒤, 관리소장은 뒤늦게 "관리규약에 동종업종 입점 제한 조항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A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어쩔 수 없죠"…동의인가, 체념인가?
상황은 복잡하게 꼬여 있었다. 관리소장은 A씨에게 "기존 점주에게 당신의 입점 사실을 알렸더니 '어쩔 수 없죠'라고 말했다"며, 사실상 동의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 대화 내용을 녹음해뒀다. 하지만 막상 기존 점주는 서면 동의를 거부하며 태도를 바꿨다.
법률 전문가들은 '어쩔 수 없죠'라는 발언만으로 명시적인 동의를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만, 이 발언은 다른 차원에서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법무법인 유안의 조선규 변호사는 "'명시적 동의'로 주장하기보다는, 그 발언을 근거로 '상대방이 공사 시작 전에 입점 사실을 명확히 인지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즉, 기존 점주가 A씨의 개업 준비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점을 밝히는 열쇠라는 의미다.
잠자는 권리, 뒤늦게 깨어나도 보호받을까?
결국 핵심 쟁점은 '알고도 한 달간 침묵한 행위'의 법적 의미다.
기존 점주는 A씨가 수천만 원을 들여 공사하는 내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내용증명은커녕 구두 경고조차 없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지점에서 A씨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위반과 '권리남용'을 주장해볼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한일 이광섭 변호사는 "상대방이 자신의 권리(동종업종 입점제한 요구권)가 있음을 알면서도 장기간 행사하지 않아 A씨가 영업 개시를 신뢰하게 만들었다"며 "뒤늦게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법원이 기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기회가 충분했음에도 이를 방치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법무법인 창세 김정묵 변호사 역시 "묵시적 동의 내지 신의칙상 금반언(모순행위금지)을 인정할 수 있는 강력한 사유"라며 "A씨가 정당한 신뢰 하에 공사를 진행했고 상대가 이를 묵인했다는 점을 주장하면 영업금지가처분 인용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괜찮다"던 중개사와 관리소, 책임은 없나?
이번 사태의 불씨를 제공한 중개법인과 관리소의 책임 문제도 거론된다. 이들은 A씨에게 '입점 가능'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야기했다.
전문가들은 영업금지가처분 소송과 별개로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법무법인 명륜 오지영 변호사는 "중개법인은 거래 중개 시 관리규약을 확인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반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리소 역시 건물 관리주체로서 부정확한 안내로 입점자에게 피해를 줬다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론적으로 A씨는 기존 점주가 제기할 수 있는 영업금지가처분 소송에 대한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 관리소장과의 대화 녹취, 공사 계약서, 중개법인과의 연락 내역 등 시간의 흐름에 따른 모든 증거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상대방의 묵인'과 '자신의 신뢰'를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다.
수천만 원의 투자와 창업의 꿈이 걸린 이 사건의 결과는, 법이 '규정의 엄격함'과 '신뢰의 가치'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 것인지에 달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