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불명 화재' 후 내 돈으로 집수리 19년 세입자, 연락두절 집주인에 '분통'
'원인불명 화재' 후 내 돈으로 집수리 19년 세입자, 연락두절 집주인에 '분통'
집주인이 전화를 피합니다 화재로 망가진 집
자비로 고쳤더니 수리비는커녕 보증금도 못 받을 판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20년 가까이 산 집입니다. 8년 전 불이 나 제 돈으로 싹 고쳤는데, 이제 와서 집주인이 전화도 받지 않고 나 몰라라 합니다."
19년간 한집에 세 들어 살며 자비로 대규모 수리까지 감행한 세입자가 계약 종료를 앞두고 보증금과 수리비를 떼일 위기에 처했다.
2005년부터 한 주택에 거주해 온 A씨의 악몽은 2016년 시작됐다.
거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집 내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소방 당국의 결론은 '원인 미상'. A씨는 40년 넘은 낡은 집을 이참에 고쳐 쓰자는 생각에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거실 복구는 물론, 낡은 전기 배선을 모두 교체하고 신식 두꺼비집을 달았다. 도배, 장판, 싱크대, 변기, 방문 4개, 이중창까지, 완벽한 리모델링은 아니어도 상당한 비용을 들여 집을 수리했다.
하지만 집주인의 태도는 시간이 갈수록 무책임해졌다.
지난해 5월, 수도를 쓰지 않는데도 계량기가 계속 돌아가는 누수 현상을 알렸지만, 집주인은 "다른 집도 그 정도는 돈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결국 A씨는 사비를 들여 사람을 불러 누수 문제까지 해결해야 했다. 2024년 11월 5일로 계약이 만료됐지만, 별다른 통보가 없어 계약은 묵시적으로 갱신됐다.
새 보금자리를 찾기로 결심한 A씨는 지난 6월 21일, 집주인에게 "8월 5일에 이사를 나가겠다"는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집주인은 전화를 받지도, 문자에 답하지도 않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어렵게 연결된 집주인의 아내는 "남편이 아프다"는 말만 남긴 채 연락을 끊었다.
결국 A씨는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고, 그제야 집주인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건 황당한 제안이었다. A씨가 지출한 모든 수리비를 포기하면, 자신도 집 외부에 남은 화재 흔적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 A씨는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내 돈 들여 고친 집, 수리비 청구할 수 있나
법률 전문가들은 A씨가 지출한 수리비를 '필요비'와 '유익비'로 나누어 청구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유안의 조선규 변호사는 "상수도 누수 수리비는 임차목적물의 보존을 위한 '필요비'에 해당해 즉시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법 제626조 제1항은 임차인이 집의 보존에 꼭 필요한 비용을 썼을 경우, 집주인에게 그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화재 이후 진행한 대규모 공사는 '유익비'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유익비란 주택의 객관적 가치를 증가시킨 비용을 말한다. 다만 조 변호사는 "유익비는 임대차 종료 시 그 가치의 증가가 현재에도 남아있는 경우에 한해 청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A씨가 진행한 전기공사, 이중창 교체 등이 현재 시점에서도 집의 가치를 높였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선 공사비 지출 영수증, 공사 전후 사진, 전문가 견적서 등의 증거 자료 확보가 필수적이다.
'묵시적 갱신' 됐는데, 이사 나갈 수 있을까
집주인이 연락을 피하는 가장 큰 이유로 추정되는 '묵시적 갱신'은 A씨의 발목을 잡을 수 없다. 이푸름 법률사무소의 이푸름 변호사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묵시적으로 갱신된 계약은 임차인이 언제든지 해지를 통지할 수 있다"며 "임대인이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해지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A씨가 6월 21일 해지 의사를 명확히 밝혔으므로, 3개월 뒤인 9월 21일부터는 계약이 완전히 종료되며 집주인은 보증금을 반환할 의무를 진다.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A씨가 취할 가장 첫 번째 조치로 '내용증명' 발송을 꼽았다.
클리어 법률사무소 김동훈 변호사는 "내용증명은 계약 해지 의사, 보증금 반환 요청, 그리고 지출한 필요비·유익비 상환 요구를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중요한 증거"라고 조언했다.
내용증명에도 집주인이 응하지 않을 경우, A씨는 이사 후에도 대항력을 유지하기 위한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곧바로 '보증금 반환 및 비용 상환 청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다만, 법무법인 인화 김명수 변호사는 "유익비 소송은 감정 절차가 필요해 시간과 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들 수 있다"며 철저한 사전 준비를 당부했다. 19년의 세월 동안 둥지가 되어준 집이 이제는 싸워야 할 전쟁터로 변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