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 촬영 무죄' 오원찬 판사, "대법원이 틀렸다"며 불법촬영 또 무죄 줬다가 '망신'
'레깅스 촬영 무죄' 오원찬 판사, "대법원이 틀렸다"며 불법촬영 또 무죄 줬다가 '망신'
[단독] '불법 촬영' 현행범으로 체포된 남성, 1심 집행유예→ 2심 무죄→대법원 파기환송
문제는 체포 당시 압수한 휴대전화의 '증거 능력', 2심에서 문제 삼아 '무죄'
대법원 "피고인도 문제 삼지 않았는데 2심 재판부가 오히려 쟁점 삼은 것은 잘못" 파기환송

지하철에서 여성을 불법 촬영 하다가 체포된 남성. 조사를 위해 휴대전화를 압수했는데 나중에 영장을 받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2018년 5월. 한 남성이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여성이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는 여성의 원피스 속을 촬영했다. 여성은 알아차렸고 경찰에 신고했다. 남성은 범행 5분 만에 경찰관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출동한 경찰은 그 자리에서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법적으로 보면 '임의제출에 의한 휴대전화기 압수'를 집행한 것이다.
경찰은 체포 후 2시간쯤 지나 A씨를 석방했다. 하지만 압수한 휴대전화는 돌려주지 않았다. 대신 다른 범죄를 확인하기 위해 디지털포렌식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압수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휴대전화에는 두 달 동안 같은 방법으로 총 7회에 걸쳐 촬영한 사진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A씨가 범행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들이었다. 경찰은 A씨가 촬영한 여성들의 사진을 CD에 복제해 증거로 첨부했다.
경찰이 이 행동은 1심 법원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피고인의 행동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 2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하지만 2심에서 완전 무죄로 뒤집혔다. 경찰이 증거를 확보한 방식이 "적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2심 법원 판사는 불법 촬영 사건 피해 사진을 판결문에 넣었다가 논란이 일었던 의정부지법 오원찬 부장판사였다. 오 부장판사는 불법 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죄가 없다"고 판결했다.
1심과 2심의 결론이 정반대로 나온 건 경찰이 증거로 확보한 'A씨 휴대전화'의 성격을 두 재판부가 다르게 봤기 때문이다.
1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랐다. 대법원은 지난 2016년 "현행범을 체포할 때 피의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을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며 "이 경우에는 사후에 영장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 '2016년 대법원 판례'에 도전했다. 경찰이 임의로 확보한 증거는 24시간 동안만 갖고 있을 수 있고, 그 이상 압수해두려면 사후 영장을 받아둬야 한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그러지 않았으니 위법한 증거 확보고, 그러므로 A씨는 무죄라는 논리였다.
의정부지방법원(재판장 오원찬 부장판사)은 "A씨가 현행범 체포 현장에서 임의제출한 휴대전화기에서 복원한 사진만 증거로 제출된 일부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라고 판결했다.
2심을 맡은 오 부장판사는 1심의 유죄 판단이 대법원 판례에 근거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 판결문을 보면 "(2심과 같은) 이 해석이 대법원 판례에 어긋나기는 하나, 영장주의 원칙에는 오히려 충실하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이 틀렸다는 주장이었다.
추가 근거로 검사의 '증명 부족'도 들었다. "형사소송법 제218조에 따른 영장 없는 압수는 '현행범' 체포 현장에서 허용되지 않고,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더라도 A씨의 휴대전화 제출에 '임의성'이 없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데, 이를 배제할만한 검사의 증명이 부족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검사는 이 판결에 반발하며 사건을 대법원으로 가져갔다.
2심 법원이 이미 확립된 대법원 판례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정면으로 반(反)하는 판결을 내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9일 대법원은 반기를 든 오원찬 부장판사의 결정에 대해 답을 내놨다. "원심의 판단은 잘못됐으니 다시 재판하라"는 판단이었다.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제3부(재판장 노태악 대법관)는 "형사소송법 제218조에 명시된 '영장 없는 압수수색'은 현행범 체포 현장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확실히 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오 부장판사가) 관련 법리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원심판결 중 무죄 부문을 파기하고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낸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2심 판결문의 다른 문제점도 지적했다.
"A씨와 변호인이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항소하지도 않았다"며 "그런데도 2심이 그동안 전혀 쟁점이 되지 않았던 A씨 휴대전화기 제출의 임의성을 부정하는 판단을 한 것은 심리미진에 해당한다"고 했다.
피고인이 주장하지도 않은 내용을 2심이 굳이 쟁점 삼아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한 것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재판이었다는 취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