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공소권 없음’ 너머: 재심과 가정폭력, 미완의 법적 책임 추궁
이춘재 ‘공소권 없음’ 너머: 재심과 가정폭력, 미완의 법적 책임 추궁
공소시효 완성에도 남는 무고 피해자 구제
가정폭력 처벌 등 법률적 책임 추궁의 가능성

숫자로 본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 연합뉴스
경기 화성 일대에서 잇따라 발생한 살인 사건의 범인 이춘재의 전처 이모씨가 31년 만에 입을 열어 충격적인 사실관계를 증언했다.
이씨는 "나도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예쁘게 살았을 것 같다", "한 사람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다"며 자신을 자책했다.
이씨가 건설회사에서 일할 때 하청업체 직원이었던 이춘재가 먼저 접근했으며, 이씨는 당시 이춘재에게서 "나빠 보이는 면이 별로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춘재는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폭행하고, 자다 깬 어린 자녀를 쳐서 아기가 떼굴떼굴 구르는 충격적인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이씨는 이춘재에게 "루틴이 어긋나거나 뜻대로 안 되면 저한테 그냥 화풀이했다"고 돌이켰다.
특히 "눈빛이 돌변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도 소름이 끼치는데, 그러면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며 공포스러웠던 순간을 증언했다.
더 소름 끼치는 사실은, 이춘재가 이웃집 살인 사건 현장을 함께 보고는 "너무 무섭다"고 말했지만, 실제 그 사건의 범인은 바로 이춘재였다는 점이다.
이춘재는 처제를 성폭행·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던 2019년에야 연쇄 살인의 진범으로 특정됐다.
그는 화성 살인 사건 10건을 포함해 총 14건의 살인과 9건의 성범죄·강도 사건 등 23건의 범행을 자백했다.
23건 '혐의 인정'에도 공소권 없음... 법적 쟁점과 남겨진 숙제
이춘재가 자백한 23건의 사건은 모두 혐의가 인정되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공소시효 완성 외에 다음의 주요 법적 쟁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공소시효 소급적용의 한계와 정지 여부
이춘재의 범행은 현행 형사소송법상 살인죄의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규정(형사소송법 제253조의2)이 존재하기 이전에 발생했다.
이 규정은 법 시행 전에 범한 범죄라도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경우에 적용되는데, 이춘재 사건은 대부분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후 자백이 이루어졌으므로 소급적용이 어렵다.
다만, 이춘재가 처제 살해 사건으로 복역 중이었기에 해당 사건에 대한 공소제기로 공소시효가 정지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공소시효 정지의 효력은 원칙적으로 피고인에게만 미치고 예외적으로 공범에게만 효력이 미친다(형사소송법 제253조 제2항).
무고한 피해자에 대한 구제와 형사보상
이춘재 사건의 경우, 과거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처벌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러한 무고한 피해자는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으며,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에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형사보상법 제2조). 이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의 구제를 위한 중요한 법적 절차다.
배우자와 자녀 대상 잔혹한 가정폭력 처벌은?
전처의 증언에 따르면 이춘재는 배우자와 어린 자녀에게 폭행을 가했는데, 이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가정폭력범죄에 해당하며, 형법상 상해죄, 폭행죄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
특히 어린 자녀를 폭행한 행위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
비록 연쇄살인 혐의는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으나,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등 별도의 법적 책임은 여전히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미완의 정의, 'DNA 증거'와 성범죄 공소시효 특례는?
이춘재가 자백한 사건 중 성범죄가 포함되어 있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의 공소시효 특례 적용 여부도 쟁점이다.
DNA 증거 등 과학적 증거가 있는 경우 공소시효가 10년 연장되거나,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성년에 달한 날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된다(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의3 제1항, 제2항).
그러나 이춘재의 범행 대부분이 해당 법률의 제정(2010년) 이전에 발생해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현재 법률의 소급적용은 한계가 있다.
다만, 이 사건을 통해 무고한 피해자의 재심을 통한 구제와 잔혹한 가정폭력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춘재 사건은 비록 범인의 처벌은 공소시효로 인해 좌절되었지만, 과거 무고한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 있는 구제와 가정 내 폭력에 대한 엄중한 법적 대응이라는 미완의 숙제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