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점멸에 건넜는데 빨간불로 바뀌어 사망"…운전자 책임은?
"녹색 점멸에 건넜는데 빨간불로 바뀌어 사망"…운전자 책임은?
'해질녘 시야 방해' 주장하는 운전자의 형사 책임 범위는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대전 서구 도마동의 왕복 6차로 횡단보도에서 50대 보행자 A씨가 승합차에 치여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지난 17일 오후 5시 47분께 해질녘에 일어났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A씨(59세)는 횡단보도의 초록색 신호등이 깜빡이는 '녹색 점멸' 상태에서 횡단을 시작했다.
그러나 A씨가 횡단을 채 마치기도 전에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고, 이 직후 승합차에 치여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경찰은 승합차 운전자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하고, 차량의 과속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속도 감정을 의뢰했다.
특히, 운전자는 해질녘이라는 시간대와 반대차선의 차량 불빛이 반사되면서 보행자가 운전자의 시야에 잘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복잡한 사실관계와 운전자의 시야 제한 주장 속에서, 이 사건의 법적 쟁점은 무엇일까?
'녹색 점멸'에 시작된 횡단, '적색'으로 바뀌어도 보호받나?
이 사건의 핵심 법률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운전자가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와 둘째, 보행자 A씨가 녹색 점멸 신호에 횡단을 시작한 행위가 과실 비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다.
핵심 쟁점 1: 횡단보도 보호 의무 위반과 '12대 중과실' 적용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에 따르면,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거나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는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않도록 일시정지해야 한다.
피해자 A씨는 비록 횡단 중 신호가 적색으로 바뀌었으나, 녹색 신호가 깜빡일 때 이미 횡단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판례는 "보행자가 녹색신호에 횡단을 시작하여 횡단 중 신호가 바뀐 경우에도 횡단보도상의 보행자로서 보호되어야 한다"고 명확히 판시하고 있다(인천지방법원 1991. 5. 30. 선고 90노1137 판결).
따라서 A씨는 횡단 중이던 보행자로서 법적 보호를 받는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운전자가 이를 무시하고 횡단보도 앞에서 서행 또는 일시정지하지 않은 채 주행했다면,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으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적용될 수 있다.
이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6호에 해당하는 '12대 중과실' 항목으로, 피해자 유족과의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운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핵심 쟁점 2: '해질녘 시야 방해'는 면책 사유가 될까?
운전자가 주장하는 해질녘 시야 확보 곤란 및 반대차선 차량 불빛 반사 역시 법적 주의의무 판단에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판례는 오히려 시야 확보가 어려운 상황일수록 운전자의 주의의무를 더욱 엄격하게 요구한다.
"해질녘이나 야간에는 시야 확보가 어려우므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태도다. 자동차 운전자는 횡단보도 앞에서 미리 속도를 줄이고 전방을 잘 살피면서, 미처 횡단을 마치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경우 즉시 정지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5. 01. 30. 선고 2014고단4273 판결).
결론적으로, 시야가 불량하다는 사실은 운전자의 주의의무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될 뿐, 형사 책임을 면책시키는 사유가 되기는 어렵다.
사망 사고 책임 가르는 '피해자 과실 비율' 판례 해법은?
피해자 A씨가 녹색 점멸 신호에 횡단을 시작했다는 점은 운전자의 형사 책임과는 별개로, 향후 민사소송(손해배상)에서 '피해자 과실'로 참작될 가능성이 높다.
녹색 점멸 신호 횡단의 과실 인정 기준
법원은 보행자가 횡단보도의 신호가 적색으로 바뀌는 예비신호인 '녹색 점멸'에 횡단을 시작한 경우에도, 차량 운전자는 여전히 보행자가 있을 수 있음을 예상하고 서행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창원지방법원 2022. 12. 15. 선고 2021나67401 판결).
다만, 보행자에게도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등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널 자기보호의무'가 있으므로(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5. 11. 선고 2019가단5037932 판결), 이 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 과실이 인정된다.
운전자 책임 판단의 최종 퍼즐: 국과수 감정 결과
현재 경찰이 의뢰한 국과수의 '차량 속도 감정' 결과는 운전자의 과실을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제한속도를 초과한 과속 사실이 확인될 경우, 운전자의 전방주시 의무 위반과 더불어 중대한 과실로 인정되어 형사처벌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블랙박스 영상과 국과수 감정 결과를 토대로, 운전자가 제한 속도를 준수하고 전방 주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는지 여부, 즉 '사고 회피 가능성'이 핵심적으로 검토된다.
종합적으로 볼 때, 운전자는 피해자가 보호받는 보행자에 해당하므로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으로 인한 형사 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최종적인 과실 비율과 형량은 국과수 감정 결과, 블랙박스 영상 분석을 통한 정확한 사고 경위, 그리고 피해자의 횡단 시점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결정될 전망이다.
운전자로서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피해자 유족과의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 양형상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