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하던 살인미수범 잡으려 차량 부순 시민들…처벌 대신 표창받는 이유
도주하던 살인미수범 잡으려 차량 부순 시민들…처벌 대신 표창받는 이유
법이 본 ‘의로운 파손’

피의자가 도주를 시도하려 탑승한 차량 유리가 시민들에 의해 깨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헤어지자는 연인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나던 남성의 차량을 시민들이 소화기로 부숴 막아섰다. 자칫 재물손괴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오히려 경찰의 표창을 받게 됐다. 법이 이들의 '파손 행위'를 '의로운 행동'으로 판단한 이유는 무엇일까?
"깨! 깨!"…긴박했던 추격전과 시민들의 합세
사건은 한 주차장에서 시작됐다. 30대 남성 A씨는 이별을 통보한 20대 여성 B씨의 직장으로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B씨가 중상을 입고 쓰러진 사이, A씨는 자신의 차량을 몰고 황급히 현장을 벗어나려 했다.
그 순간, 끔찍한 범행을 목격한 시민들이 A씨의 앞을 가로막았다. 한 남성은 소화기를 들고 외쳤다. "깨! 깨! 깨!" 차량이 멈추지 않자, 그는 망설임 없이 소화기를 던져 앞유리창을 박살 냈다.
다른 시민은 쇠파이프로 뒷유리창을 내리쳤고, 차에서 내린 A씨에게 또 다른 시민이 소화기를 분사하며 저항을 무력화했다. 시민들의 용기 있는 합세 덕분에 A씨는 현장에서 붙잡혀 출동한 경찰에 넘겨졌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이미 B씨를 폭행하고 스토킹해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 시민들의 기지가 소중한 생명을 구한 셈이다.
차량 부순 행위, 왜 '재물손괴' 아닐까?
언뜻 보면 시민들의 행동은 타인의 재물을 손괴(재물손괴죄)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법은 이러한 행위를 '정당행위'로 판단해 처벌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법적 근거가 작용한다.
① 형사소송법 제212조에 명시된 '현행범 체포' 권한
이 조항은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르고 있거나 저지른 직후의 범인은 경찰관이 아니더라도 일반 시민 누구나 붙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시민들은 흉기 난동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하는 A씨를 현행범으로 보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② 형법상 '정당방위'(제21조)와 '긴급피난'(제22조)
정당방위는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신 또는 타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긴급피난은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동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번 사건에서 시민들의 행동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할 수 있다. 흉기를 소지한 범인이 도주해 추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고, 차량을 멈추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었다. 즉, 차량 유리창 파손이라는 손해보다 더 큰 위험(추가 인명 피해)을 막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였다.
'업어치기'로 성폭행범 제압한 가수 에이톤
이처럼 시민이 범인을 제압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2019년, 가수 에이톤(본명 임지현)은 서울 마포구의 한 주택가에서 여성을 성폭행하려던 외국인 남성을 '업어치기'로 제압해 경찰에 넘겼다.
당시 여성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에이톤은 용의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다가 유도 기술을 사용해 넘어뜨렸다. 그의 행동 역시 명백한 현행범 체포 요건을 갖춘 정당한 행위였다. 에이톤은 언론 인터뷰에서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되니, 옷을 붙잡고 업어치기로 제압했다"며 침착하게 대응했음을 밝혔다.
경찰이 흉기 난동범을 막아선 시민들에게 표창을 수여하기로 한 것은 이들의 행동이 법적으로 정당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안전을 지킨 의로운 행동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