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야근이었다" 런베뮤 주장, 법적 책임 면제될까? 과로사 인정 기준은
"자발적 야근이었다" 런베뮤 주장, 법적 책임 면제될까? 과로사 인정 기준은
"지문인식기 오류" 주장 속 유족 측 '주 80시간' 근거는?
자발적 야근도 과로사 책임 면제 안 돼

정의당, 유명 베이커리 앞 기자회견 / 연합뉴스
유명 베이커리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에서 20대 직원이 장기간 노동 끝에 사망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근로 기록이 없을 경우 '숨겨진' 근로시간을 어떻게 증명할지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유족 측은 고인이 사망 전 1주일간 80시간 12분을 일했으며, 사망 전 12주 동안에도 평균 주 60시간의 격무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주 80시간 근무는 사실이 아니며 평균 주 44시간 수준이라고 반박하는 한편, 지문인식기기의 오류로 사고 직전 고인의 실제 근로 기록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사업주에게 출퇴근 기록을 전자적으로 측정·기록해야 할 의무 조항이 없어, 이처럼 기록이 없는 경우 과로사 등 산업재해 인정 과정에서 실제 근로시간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때 근로시간을 추정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간접 증거다.
출퇴근 기록 대신 '이것'을 모아라: 법원에서 인정받는 결정적 간접 증거
노무사들은 근로시간을 증빙할 수 있는 모든 자료가 동원된다고 조언한다. 출퇴근 기록이 부재할 경우 다음과 같은 간접 증거들이 근로시간 추정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 교통카드 이용 내역: 출퇴근 시간을 추정하는 유력한 자료가 된다.
- 업무 메신저 대화: 상사·지인과 나눈 업무 관련 대화나 파일 송수신 기록은 업무 개시 및 종료 시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 통화 기록: 업무 시간 내외의 통화 내역이 활용될 수 있다.
- 사내 업무 프로그램 로그인 기록: 로그인이 업무 수행과 직결되는 경우 객관적인 증거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모든 간접 증거가 법원에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김유경 노무사는 "노동자와 회사 모두 근로 시간을 조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증거들은 신뢰가 없다고 판단한다"며, 야근 시 회사 시계 앞에서 찍은 사진 같은 단독 증거는 전반적인 맥락에서 간접 증거는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야근을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 과거 법원은 스마트폰 앱을 근거로 제출된 연장근로 기록에 대해 조작 가능성을 이유로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
노무사들은 노동자가 자신의 연장근로를 인정받으려면 평소 근무 기록을 꾸준히 남겨 공신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기 작성보다는 사내 업무 프로그램 로그인 기록, 업무상 필요한 파일을 상사와 주고받은 기록 등 객관적이고 조작이 어려운 자료를 남기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발적 야근이었다"는 회사 주장, 법적으로 통할까? 과로사 책임의 무게
런베뮤 사건에서는 고인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근무한 것이 '자발적 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회사 측의 반박이 나오면서 자발성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많은 회사가 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연장근로를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은 아니다"라거나, "직원이 책임감이 커 자발적으로 일했다", "업무 능력이 부족해 일을 더 오래 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법적 판단은 이와 다르다. 설령 근로자가 자진해서 야근했더라도, 회사의 과로사 책임은 면제되지 않는다. 사업주가 장시간 노동을 제지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박성우 노무사는 "일정한 시간 이상 일했으면 자발적 여부를 따지지 않고 과로를 인정하고 있다"며,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단언했다.
과거 법원에서도 5주 연속 야근을 자청한 뒤 사망한 직원의 과로사를 인정한 사례가 있다. 당시 재판부는 회사가 야간근무를 적극적으로 만류하거나 금지하지 않았다면 신체적 무리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과로사 인정 여부는 근로자의 의사 여부가 아니라, 실제 근로시간과 업무의 양 및 강도를 바탕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매각 중 발생한 사망, 전·현직 경영진의 책임 범위는?
고인의 사망 시점이 런베뮤를 운영하는 엘비엠(LBM)의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던 시기와 겹치면서, 전·현직 경영진 중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런베뮤는 지난 7월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JKL파트너스에 약 2천억 원에 매각됐다.
노무사들은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책임 소재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 형사적 책임: 사건 발생 당시의 경영진이 책임 의무가 크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이 인정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 민사 소송(손해배상):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단순히 자산을 매각한 것이 아니라 영업양도·양수 방식으로 인수 절차를 밟았다면, 기존 회사의 권리 의무가 현 경영진에게도 책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상법에 따라 영업양수인이 양도인의 상호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 양도인의 영업으로 인한 제3자의 채권에 대하여 양수인도 변제할 책임이 있다.
이번 사건은 근로 기록이 없거나 회사가 근로시간을 인정하지 않을 때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지, 그리고 과로사의 법적 책임 범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