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버스 라디오 금지 민원 논란…버스기사들이 라디오를 끌 수 없는 이유
서울 시내버스 라디오 금지 민원 논란…버스기사들이 라디오를 끌 수 없는 이유
서울시의회에 "버스기사 라디오 청취 금지 조례" 민원 접수
기사들 "라디오는 유일한 졸음방지책"
서울시 "일률적 금지 어려워"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최근 서울시의회에 시내버스 기사들의 라디오 청취를 금지하는 조례를 만들어 달라는 민원이 접수됐다.
민원인은 "버스는 자가용이 아닌 서비스업인데, 기사마다 다른 라디오 취향을 승객들이 듣는 게 고역"이라며 "기사가 라디오를 트는 행위는 버스에 탄 승객 모두에게 불편을 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일률적인 금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행 법령상 라디오 청취 자체가 금지 대상이 아닐뿐더러, 새로운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서울시는 "승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운수 업체에 지속적으로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사들 "졸음 쫓으려 바늘 들고, 내 뺨까지 때린다"
불편을 호소하는 승객들의 목소리 이면에는 운전대를 잡는 기사들의 절박한 현실이 있다. 이들에게 라디오는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졸음방지용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15일 방송된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서울 시내버스 운전기사 천정일씨는 "어떤 사람은 고추를 갖고 다니고, 바늘을 갖고 다니며 운행을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천씨는 "신호에 걸렸을 때 승객들에게 '제가 잠깐 졸려서 내려서 환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그러면 부끄러워서 잠이 확 깨버린다"며 "운행하다가 그런 시간이 안 생길 때는 내 뺨을 때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사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해당 기사는 "새벽 4시 첫차를 위해 최소 30분 전에 나와야 한다"며 "하루 8시간, 10시간씩 도는데 기사들은 졸음하고 싸우는 것이다. 솔직히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호소했다.
서울 시내버스의 경우 왕복 5시간이 넘는 노선이 적지 않다. 휴식 없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리는 것과 맞먹는 노동 강도 속에서, 졸음과의 사투는 온전히 기사 혼자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겨져 있다.
승객이 원해서 트는 경우도 다수… 현재는 스피커 분리 운영 중
승객이 불편을 이유로 라디오를 꺼 달라고 요구하면 기사는 즉각 응해야 하는 구조다.
과거 일부 기사들이 특정 종교 방송을 틀었다가 민원이 발생해, 현재 회사 차원에서 종교 방송 청취는 금지하고 있다. 다만 정치, 시사, 토크, 음악 프로그램 등은 제한을 두지 않는다.
반대로 승객이 먼저 라디오 청취를 요구하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중계, 선거철 개표 방송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발생했을 때 뉴스를 틀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특히 새벽 첫차를 이용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날씨 예보나 교통 정보를 듣기 위해 먼저 라디오를 켜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현재 서울 시내버스는 운전석과 승객석 뒤쪽의 스피커가 분리되어 송출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기사들은 운전석 스피커를 통해서만 조용히 라디오를 듣고, 정류장 안내 방송은 버스 전체로 송출되는 방식이다.
가로폭 78cm의 비좁은 운전석. 천정일씨는 "내가 졸아서 사고가 생기면 직장을 잃게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니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있다"며 "덜 졸리고 머리가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환기를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