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정지 풀어주면 1500만원” 피해자 두 번 울리는 보이스피싱의 덫
“지급정지 풀어주면 1500만원” 피해자 두 번 울리는 보이스피싱의 덫
보이스피싱범의 ‘달콤한 제안’, 거절이 정답이었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보이스피싱으로 2000만원을 잃은 피해자에게 가해자 측이 '지급정지를 풀면 1500만원을 주겠다'며 두 번 울리는 위험한 제안을 건넸다.
순식간에 2000만원을 잃은 피해자 A씨에게 남은 마지막 동아줄은 '계좌 지급정지' 조치였다. 범인 계좌에 돈이 묶여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이던 어느 날,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자신을 가해자 측 변호사라고 밝힌 남자는 “지급정지를 먼저 풀어주면 1500만원을 즉시 돌려주겠다”는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했다. 희망과 의심 사이, A씨는 인생 최대의 갈림길에 섰다.
순간 흔들렸지만, A씨는 “돈을 먼저 주면 풀어주겠다”고 맞서며 전화를 끊었다. 이 본능적인 거절은 그의 남은 재산을 지키는 결정적 한 수가 됐다.
계좌 묶인 가해자의 '위험한 합의', 덥석 물면 남은 돈도 잃는다
A씨는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피해금의 75%를 돌려준다는데, 밑져야 본전 아닌가?' 잃어버린 돈의 대부분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의심을 흔들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고민에 단호히 선을 긋는다. 사이버수사대 수사관 출신인 윤준기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율)는 “피해 변제를 보장할 아무런 법적 장치 없이 지급정지를 먼저 해제할 경우, 남은 금액마저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상당하다”고 경고했다.
지급정지가 풀리는 순간 계좌 명의자는 남은 돈을 모두 인출해 잠적할 수 있다. '1500만원을 주겠다'는 약속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정찬 변호사(더신사 법무법인) 역시 “보증 없는 선(先)해제 요구는 추가 피해 우려가 크다”며 A씨의 거절이 현명했다고 평가했다.
가해자가 합의에 목매는 이유 '감형' 위한 이기적 속셈
그렇다면 이들은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 '비공식 합의'를 시도하는 걸까. 그 이유는 계좌 명의인이 처한 형사 처벌 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광섭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계좌 명의인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및 사기방조 혐의로 선처를 받는 것이 목적”이라며 “이를 위해 피해자와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기에, 피해자의 돈을 미끼로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그 속내를 꿰뚫었다.
결국 이 제안은 피해 회복이 아닌, 자신의 감형을 위한 이기적인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피해자인 A씨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인 간 합의는 금물 국가가 보증하는 '피해금 환급' 절차 밟아야
그렇다면 A씨가 남은 돈을 안전하게 돌려받을 방법은 무엇일까. 사기꾼과의 위험한 줄다리기 대신, 전문가들은 국가가 마련한 공식 구제 절차를 따를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다. 추은혜 변호사(법률사무소 더든든)는 “금융감독원의 공식 피해구제 신청을 통해 지급정지된 계좌의 잔액 범위 내에서 환급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이 '채권소멸절차'를 공고하고 약 2개월간 계좌 명의인의 이의제기가 없으면, 남은 잔액이 피해자에게 돌아온다. A씨가 회수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금액은 바로 이 계좌에 묶여있는 돈이다.
만약 이 절차로도 피해금 전액을 회수하지 못했다면, 남은 길은 소송이다. 김준성 변호사(법무법인 공명)는 “수사 단계에서 가해자와 합의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계좌 명의인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 등 민사소송을 제기해 추가 회수를 시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A씨의 현명한 거절은 보이스피싱이라는 첫 번째 범죄에 이어, '합의'를 빙자한 두 번째 덫에 걸려들지 않게 한 결정적 방어선이었다.
피해자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2차 가해 시도가 계속되는 만큼, 낯선 제안 앞에서는 잠시 멈춰 서서 공식적인 절차와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