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별로 시나리오 짜서 범행⋯10명의 부모에 2억 뜯어낸 교활한 '그놈'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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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별로 시나리오 짜서 범행⋯10명의 부모에 2억 뜯어낸 교활한 '그놈' 목소리

2020. 05. 12 10:41 작성2020. 05. 12 11:12 수정
조하나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one@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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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 피해자들 타깃으로⋯자식별 특성 살펴서 최적의 시나리오 만들어

자식들 걱정하는 부모 마음 악용해 약 2억여원 뜯어내

완전범죄 꿈꿨지만, 집요하게 파고든 경찰의 수사 덕에 행동책들은 붙잡혀

보이스피싱으로 한 달간 10명에게 2억480만원을 뜯어낸 일당. 그들은 70세 이상의 고령의 아버지⋅어머니만을 노려 범행을 저질렀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당신 아들이 큰 사고를 냈다. 아들이 사채업자에게 친구 보증을 서줬는데 그 사람이 도망을 갔으니 아들 대신 돈 5300만원을 갚아라. 그렇지 않으면 아들을 없애버리겠다."


지난해 2월 어느 날 아침, 71세 A 할아버지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돈을 주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통화 중간중간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들인 것 같았다.


당장 현금 2000만원을 뽑았다. 돈을 소중히 안고 전화 건 사람이 시키는 대로 경기도 부천시의 한 골목으로 갔다. 그곳엔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에게 돈을 건넸다. "아들은 어디 있냐" 이런 질문을 할 새도 없이 그는 돈만 받고 사라졌다.


다시 걸려 온 전화에 A 할아버지는 또 1000만원을 추가로 인출했다. 통화한 상대방이 하라는 대로 돈을 다시 전달했다. 그러나 A 할아버지 아들은 멀쩡히 살아있었다. 모르는 전화가 계속 걸려와 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A 할아버지로부터 돈을 가로챈 일당은 보이스피싱 일당. 이들은 같은 방식으로 한 달간 10명에게 2억480만원을 뜯어냈다.


철저한 사전준비⋯피해자에 따라 맞춤형 시나리오 짜

이 보이스피싱 일당이 노린 피해자들은 70세 이상의 고령의 아버지⋅어머니들이었다. 이들에게 "아들(혹은 딸)의 목숨이 아깝거든 돈을 내놔라"고 협박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식들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전화를 받지 못하게 했다.


전화로 협박하면서 누군가의 비명을 들려주는 것도 '패턴'이었다. 실감 나는 비명을 들은 피해자들은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확신했다.


이들 일당들은 피해자에 따라 맞춤형으로 시나리오를 짰다. 사업을 하고 있는 자식이 있다면 경찰을 사칭했고, 돈을 빌려 쓴 흔적이 보이면 사채업자로 스스로를 포장했다. 그게 아니라면 조직폭력배라고 하며 협박했다.


피해자에게 다시 전화해 마지막 80만원도 '탈탈' 털어가

이런 범죄가 통할 수 있었던 건 실감 나는 연기 덕이었다. 아무리 친자식이라도 다급하게 소리 지르는 목소리라면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했다. 주로 "으악!"라는 비명소리를 내질렀지만, 때에 따라서는 "살려달라"는 호소도 곁들였다.


계속 부모를 찾으며 목숨을 애원하는 목소리에 피해자들은 "그러지 말아달라. 돈을 주겠다"고 무너졌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한 범죄였던 셈이다.


서울 중랑구의 피해자 B씨는 통장에 있는 마지막 돈까지 모두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빼앗겼다. 5000만원을 요구했지만, "가지고 있는 건 이것뿐"이라며 1900만원을 건넸다. 이 일당은 B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수중에 있던 80만원까지 모두 뜯어갔다.


무선 공유기 이용해 '인터넷 전화'로만 통화했지만 끈질긴 추적 끝에 검거

실감 나는 연기를 펼친 보이스피싱 일당은 돈을 건네받는 장소도 신중하게 골랐다. CCTV가 가급적이면 없으면서도 오가는 사람들은 많은 곳으로 고르고 골랐다. 누가 범죄자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장소였다.


통신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무선 공유기를 들고 다니며 인터넷 전화를 이용했다. 경찰의 기지국 추적을 막기 위해서였다.


보이스피싱 일당이 체포를 피하기 위해 온갖 수법을 동원했지만, 경찰도 그런 그들을 집요하게 쫓았다. 범행이 일어난 시간대에 해당 장소를 지나간 차량 블랙박스를 모조리 뒤졌고, 인터넷 전화를 사용한 것을 파악한 후 무선 공유기 사용 내역까지 모두 훑었다. 결국, 지나가던 버스에 보이스피싱 일당 중 한 사람이 찍힌 것을 확인했다. 인터넷 전화 내역도 확인해 그를 체포했다.


수원지법 김명수 판사는 지난해 9월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현금 운반책으로 활동한 말레이시아인 C씨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범행을 인정하고 초범이지만, 저지른 범죄가 매우 불량하다"며 "피해가 회복되거나 피해자와 합의하지도 못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C씨를 포함해 실제 협박을 하고 돈을 가져온 손⋅발 역할의 일당들은 붙잡혔지만, 불행히 이들을 총지휘한 이른바 총책은 아직 검거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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