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6)] 법률행위에 붙은 꼬리표
[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6)] 법률행위에 붙은 꼬리표
기한과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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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표시에 붙은 꼬리표'가 붙으면 법률관계가 복잡해진다. 이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 그 의미를 분명히 알고 계약해야 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편집자 주
원로법학자 호문혁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시민이 알아야 할 기초적인 법 이야기를 재미있는 에세이 형식으로 연재한다. 호문혁 교수는 사법정책연구원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초대 이사장 등을 지내고 저서 「민사소송법」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민사법학자다.
어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금년 말까지는 이자를 반만 받을게", 또는 "내 회사에 입사하면 이자는 반만 받을께"라고 말하면 채무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이자를 반만 받는다는 말을 듣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금년 말이 지나거나 입사하지 않으면 이자를 깎아주지 않을 테니까. 여기서 채무자가 이자를 반만 내는 데에 붙은 꼬리표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가 '금년 말까지'이고, 다른 하나가 '입사하면'이다. 이처럼 어떤 의사표시에 붙은 꼬리표를 부관(附款)이라고 한다. 앞서 본 것처럼 의사표시나 법률행위에 부관을 붙이면 그 효력 발생에 일정한 제한이 생긴다.
부관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가 기한(期限)이다. '금년 말까지'에서 금년 말이라는 시점은 분명히 온다. 이처럼 장래 올 것이 확실한 시점을 부관으로 붙인 것을 기한이라고 한다. 즉, '금년 말'을 기한으로 삼은 것이다. 기한에는 두 가지가 있다. '금년 말까지'가 붙어 있으면 금년 말이 지나면 이자를 반만 내는 효과가 없어진다. 그래서 이러한 기한을 종기(終期)라고 한다. 즉, 종기가 있는 법률행위는 그 기한이 도래한 때로부터 효력을 잃는다. 그와 반대로, '내년 2월 1일부터 이자를 반만 받기로 한다'고 하면 이자를 반만 지급하면 되는 것이 내년 2월 1일부터이다. 이러한 기한을 시기(始期)라고 한다. 즉, 시기가 있는 법률행위는 기한이 도래한 때로부터 효력이 생긴다. 기한이 붙어 있는 경우에 보통 채무자는 기한까지는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기한의 이익'이라고 한다. 기한의 이익은 채무자가 포기하여 기한이 되기 전에 채무를 갚아도 된다. 그러나 그로써 채권자의 이익을 해쳐서는 안 된다. 채무자가 미리 갚으면 채권자가 본래 기한까지 받을 이자를 받을 수가 없다는 불이익을 입기 때문이다.
부관의 다른 하나가 조건(條件)이다. '내 회사에 입사하면'에서 채무자가 입사할지, 않을지가 확실하지 않다. 이처럼 장래 발생할 것이 불확실한 사실을 부관으로 붙인 것을 조건이라고 한다. 즉, 채무자의 입사를 조건으로 삼은 것이다. 조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위의 예에서 '입사하면'이라는 조건이 붙으면 이자를 깎아주는 효과는 입사할 때까지는 생기지 않고 정지된다. 그래서 이러한 조건을 정지조건(停止條件)이라고 한다. 즉, 정지조건이 붙은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된 때로부터 효력이 생긴다. 그와 반대로, 자동차 매매계약을 하면서 엔진에 고장이 나면 계약이 없던 것으로 하여 자동차를 돌려주고 매매대금을 반환받기로 하였으면, '엔진의 고장'은 계약의 효력을 없애는 조건이다. 계약을 하면 바로 효력이 생기지만 조건이 성취되면 효력이 없어진다. 이러한 조건을 해제조건(解除條件)이라고 한다. 즉, 해제조건이 붙은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된 때로부터 효력을 잃는다.
기한은 시일이 지나면 도래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복잡한 문제가 적다. 그러나 조건은 그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청춘 남녀가 "북극성이 남쪽 하늘로 자리를 옮기면 우리 결혼하자"고 약속을 하면 이 조건은 정지조건인데, 이처럼 불가능한 일을 정지조건으로 삼으면 절대로 결혼하지 말자는 의미가 되므로 그 약속행위는 무효가 된다. 그리고 혼인하면서 "북극성이 남쪽 하늘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만 살자"고 약속을 하면 이 혼인은 불가능한 일을 해제조건으로 삼은 것으로, 조건을 붙인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조건 없는 법률행위가 된다. 그리고 "네가 내 첩으로 들어오면 아파트를 한 채 주겠다"는 계약을 하면 이 계약은 '첩이 되는 것'을 정지조건으로 한 증여계약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불법조건이어서 계약 전체가 무효가 된다.
법률행위에 조건이나 기한이 붙으면 법률관계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 그 의미를 분명히 알고 해야 한다.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빠지지 않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