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테러 협박한 일본 변호사 '가라사와 다카히로'… 그 역시 피해자다
폭탄 테러 협박한 일본 변호사 '가라사와 다카히로'… 그 역시 피해자다
3년째 학교에 폭탄테러 팩스 보낸 범인
일본 극우에 '좌표 찍힌' 변호사 사칭했다
경찰, 미국과 공조해 웹팩스 발신지 추적 중

지난 8월 10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폭발물 설치 신고가 접수돼 관중들이 대피해 있는 모습. /연합뉴스
3년째 전국 중·고등학교를 공포에 떨게 한 연쇄 폭발물 테러 협박범이, 일본 극우 커뮤니티의 사이버 공격 피해자인 현직 변호사를 사칭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수법이 일본에서 발생했던 유사 사건을 모방한 것으로 분석되는 가운데, 경찰은 미국 등과 국제 공조를 통해 범인 추적에 나섰다.
최근 서울, 인천, 부산 등지의 중·고등학교에는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내용의 협박 팩스가 잇따라 접수됐다. 경찰 특공대와 군 폭발물처리반이 긴급 출동했지만 실제 위험 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과 교직원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반복되면서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이 팩스들은 모두 ‘가라사와 다카히로’라는 일본 변호사의 이름으로 발송됐다. 김연준 변호사(로엘 법무법인)는 23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서 “테러 협박범이 익명이 아닌 실명을, 그것도 일본 변호사의 명의를 사용한 점이 매우 특이하다”고 밝혔다.
사이버불링 피해자 돕다 '좌표 찍힌' 일본 변호사
경찰 조사 결과, ‘가라사와 다카히로’는 일본에서 실제 활동 중인 변호사였다. 그 역시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다. 그는 “누군가 나를 사칭하고 있다”며 자신과의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왜 수많은 사람 중 가라사와 변호사를 범행에 끌어들인 걸까.
김연준 변호사에 따르면, 발단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가라사와 변호사는 일본의 한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개인정보 유출과 사이버 불링을 당하던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가 커뮤니티에 게시글 삭제를 요청하자, 화살은 되레 그에게로 향했다. 소위 ‘좌표가 찍힌’ 것이다.
이후 그의 사무실에 사망 통지서가 배달되거나 집기가 도난당하는 등 괴롭힘이 이어졌다. 급기야 2023년에는 그의 명의를 도용한 협박범들이 일본 내 학교와 지자체 등에 30만 장의 협박 팩스를 보내 체포되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이 수법을 그대로 모방한 ‘카피캣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3년째 오리무중…웹팩스 이용해 추적 피해
문제는 2023년부터 유사 범죄가 반복되고 있지만, 3년 가까이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로파일러들은 범인이 한 명일 가능성이 높으며, 일본인을 사칭한 한국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수사가 난항을 겪는 이유는 범인이 인터넷을 통해 팩스를 보내는 ‘웹팩스’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범인이 팩스를 보낸 발신지 데이터가 여러 경유지를 거치기 때문에 역추적에 높은 수준의 기술과 시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팩스 발신자 번호를 추적한 결과 미국의 한 웹팩스 업체로 파악하고, 미국 사법 당국에 가입자 정보 등을 요청하며 국제 공조 수사를 벌이고 있다.
신설된 공중협박죄 적용…손해배상 청구도 가능
만약 범인이 검거된다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정부는 이런 유형의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3월 18일 형법 제116조의 2 ‘공중협박죄’를 신설했다. 불특정 다수의 생명·신체에 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조항이다. 상습범은 가중 처벌되며 미수범도 처벌 대상이다.
또한, 실존 인물의 명의를 도용했으므로 명예훼손이나 사문서위조 혐의도 적용될 수 있다.
형사 처벌과 별개로 막대한 세금 낭비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위 협박 신고 한 번에 경찰, 소방 등 수많은 인력과 장비가 동원되는 공권력 낭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정부는 이런 불법 행위로 인해 입은 손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법무부는 최근 살인 예고글 게시자 등을 상대로 1,200만 원에서 4,000만 원 수준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