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ATM, 그리고 촉법소년… 끝나지 않는 교실의 비극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노예, ATM, 그리고 촉법소년… 끝나지 않는 교실의 비극

2025. 08. 19 17:14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충남 휩쓴 학교폭력 사태, 법은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가

충남 청양의 한 고등학생은 3년 동안 동급생들에게 '노예', '빵셔틀', '인간 ATM'으로 불리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구글 제미나이

3년간 '노예'로 불린 친구, 법정에 선 가해 학생들은 '촉법소년'이라는 방패 뒤에 숨었다.


충남 청양의 한 고등학생은 3년 동안 동급생들에게 '노예', '빵셔틀', '인간 ATM'으로 불리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금품 갈취와 집단폭행은 일상이었다. 비슷한 시기 천안에서는 한 중학생이 또래 무리에게 집단폭행을 당했고, 기숙형 고등학교에서는 4개월간 끔찍한 강제추행이 벌어졌다. 교실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이 잔혹한 사건들은 단순한 '아이들의 장난'이 아닌, 「학교폭력예방법」이 규정하는 명백한 범죄 행위다. 신체와 정신, 재산에 피해를 주는 모든 행위가 학교폭력에 해당한다. 그러나 가해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달랐다. 어떤 이들은 법의 심판대에 섰고, 어떤 이들은 법의 보호막 뒤로 걸어 들어갔다.


"내 친구는 '인간 ATM'이었습니다"

청양에서 3년간 이어진 폭력의 가해자 C군 등 고교 2학년생들은 특수협박·폭행·공갈, 심지어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까지 적용돼 검찰의 손에 넘어갔다. 만 14세 이상, 형사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형사적 대가를 치러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천안 집단폭행 사건의 가해자 일부는 달랐다. 이들은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촉법소년(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형사미성년자)'이었다. 소년법에 따라 이들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 소년부 보호사건으로 처리될 뿐이다. 같은 폭력을 저지르고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법의 무게추가 다르게 기운 것이다.


'촉법소년'의 그늘, 처벌 대신 보호받는 가해자들

촉법소년 제도는 교화와 개선을 통해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다는 취지를 갖는다. 하지만 피해자의 고통과 국민 법 감정 앞에서는 종종 '가해자 보호법'으로 비친다. 가해학생에게 내려지는 조치는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에 따라 서면사과, 봉사활동, 특별교육, 출석정지, 전학 등 9가지다. 가장 무거운 처분인 퇴학조차 의무교육 과정인 중학생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폭력의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가해자의 반성 정도 등을 점수화해 조치 수위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 과정이 피해자의 찢긴 마음에 충분한 위로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법이 지켜줄 거란 믿음 먼저"…피해자의 눈물과 교육계의 호소

"피해학생이 신고했을 때 '법과 제도가 나를 확실하게 보호해 줄 수 있다'는 신뢰를 먼저 줘야 합니다." 충남교사노조 최재영 위원장의 외침은 학교폭력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보복이 두려워, 혹은 알려져도 달라질 게 없다는 절망감에 수많은 피해자가 침묵을 선택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충남교육청은 부교육감을 단장으로 하는 전담팀을 꾸리고 '충남학생지킴이' 앱을 보급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피해자를 완벽히 보호하고, 가해자에게는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하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학교 문화를 만드는 것, 이 세 가지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모와 학교는 책임 없나? '감독 소홀'의 대가

가해학생의 뒤에는 부모와 학교가 있다. 우리 민법은 미성년 자녀가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감독의무자인 부모가 배상 책임을 지도록 규정한다(민법 제755조). '감독 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자녀의 잘못은 곧 부모의 법적 책임으로 이어진다.


학교와 교사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학교폭력을 인지하고도 숨기거나 축소하려 했다면 징계 대상이 된다. 예방 교육부터 조기 발견, 신속한 분리 조치까지 학교의 책임은 막중하다. 한 아이의 인생을 망가뜨린 폭력의 대가는 가해학생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어른들 모두가 함께 져야 하는 셈이다.


처벌이 아닌 교육?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학교폭력

학교폭력 가해자 조치의 궁극적 목표는 '처벌'이 아닌 '교육'과 '선도'다. 법은 가해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고자 한다. 하지만 그 숭고한 이념이 피해자의 피눈물을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신고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들며,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절실하다. 가해자에게는 엄정한 책임을 묻되, 진정한 반성과 변화를 이끌어낼 교육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실의 비극은 '처벌이냐 교화냐'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채 영원히 반복될지 모른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