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 물 넘쳤다고 300만원?…'투숙객 과실' vs '모텔 시설 하자' 법적 쟁점
욕조 물 넘쳤다고 300만원?…'투숙객 과실' vs '모텔 시설 하자' 법적 쟁점
배수구 없는 욕조, 법원은 누구 손 들어줄까…전문가들 '과실상계'로 배상액 줄어들 가능성

출장 길에 모텔에 든 A씨가 욕조물을 틀어놓고 깜빡 잠이 들었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깜빡 잠들었을 뿐인데 300만원 '물벼락'…배수구 없는 욕조, 누구 책임일까
하룻밤 휴식을 위해 찾은 모텔에서 욕조 물이 넘쳐 발생한 손해배상 책임을 두고 직장인 A씨가 던진 질문이다. 모텔 욕조에서 물을 넘치게 한 투숙객에게 주인이 수리비 300만원을 요구했으나, 법조계에서는 배수구가 없는 등 시설 하자를 이유로 배상액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남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A씨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전라도의 한 모텔에 들어섰다. 방에 들어선 그의 눈에 특이한 구조가 들어왔다. 욕조는 화장실이 아닌, 카펫이 깔린 방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별도의 배수구나 물 빠짐 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A씨는 여독을 풀기 위해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퍽’ 하는 둔탁한 파열음이 들렸다. 동시에 방 안의 모든 불이 꺼지며 칠흑 같은 암흑이 찾아왔다. 넘친 욕조 물이 카펫 아래 깔린 전기 난방 패널로 스며들어 누전 차단기를 작동시킨 것이었다. 모텔 주인은 A씨에게 “바닥 전기매트 공사비 200만~300만원을 당신이 모두 물어내야 한다”고 통보했다.
잠든 내 잘못 100%? ‘과실상계’가 구원투수
우선 물을 틀어놓고 잠든 A씨의 과실은 명백하다. 법률사무소 정중동의 김상윤 변호사는 “물을 틀어놓고 잠든 행위는 주의의무 위반(과실)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의 저울이 A씨에게만 불리하게 기울지는 않는다. 우리 민법은 '과실상계'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손해 발생에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다면, 가해자의 손해배상 책임과 액수를 정할 때 그 과실을 참작해 깎는 것이다. 즉, A씨의 과실과 모텔 측의 시설 관리상 과실 비율을 따져 최종 배상액을 정하게 된다.
‘시한폭탄’ 같았던 욕조…법의 저울은 어디로
법의 저울은 오히려 모텔 주인 쪽으로도 기운다. 우리 민법 제758조(공작물 등의 점유자, 소유자의 책임)는 건물처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시설(공작물)의 문제로 손해가 발생하면, 일단 그 시설을 관리하는 점유자(모텔 주인)에게 배상 책임을 묻는다. 여기서 '하자'란 시설이 통상적으로 갖춰야 할 안전성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과거 대법원의 판단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관방 부엌 아궁이의 연탄가스가 환기구 없는 벽의 틈새로 스며들어 투숙객이 숨진 사건에서, 재판부는 “건물이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건물 주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대법원 91다29767 판결). 배수구 없는 욕조 역시 이와 같이 '비정상적 구조'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김 변호사는 “배수시설이 없는 욕조를 설치하고 바닥에 전기매트를 까는 등 누수 시 안전사고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은 모텔 측 과실이 인정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이 상당 부분 경감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A씨는 “이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만약 모텔 주인이 과거 유사 사고를 통해 시설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주인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진다.
혹시나 했던 보험…'약관 확인'이 먼저
A씨는 이전 투숙객이 '운전자보험의 여행 손해 비용'으로 문제를 처리했다는 말을 듣고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모든 보험에 적용되는 사항이 아니다. 법률사무소 조이의 윤관열 변호사는 “운전자보험의 여행 손해 비용 보장은 상품마다 다르므로 가입한 보험사의 약관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필수”라고 조언했다.
결국 이 사건의 열쇠는 A씨의 '사소한 부주의'와 모텔의 '치명적일 수 있었던 구조적 위험'이라는 두 과실을 법원이 어떤 무게로 저울질하느냐에 달리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