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약금 5천만원 받은 뒤 '빚이 더 있다'…집주인의 고백, 계약금 떼일 판
가계약금 5천만원 받은 뒤 '빚이 더 있다'…집주인의 고백, 계약금 떼일 판
가계약금 입금 직후 드러난 추가 근저당, 안전장치 요구마저 거부…법률 전문가들이 본 '사기 계약' 취소 가능성은?

주택 매수자가 가계약금을 보낸 후 매도인이 숨겨진 빚을 고백하고 안전장치 요구도 거절했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믿는 도끼에 발등…5천만원 보낸 뒤 드러난 집주인 '숨겨진 빚', 계약금 돌려받을 묘수는?
내 집 마련의 꿈에 부풀어 가계약금 5천만원을 입금한 A씨. 하지만 입금 확인이 끝나자마자 매도인 B씨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등기부등본에 없던 '추가 빚'이 있다는 고백이었다.
A씨는 과연 이 계약을 무르고 소중한 계약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을까. 부동산 거래에서 신뢰가 무너졌을 때 매수인이 택할 수 있는 법적 구제 수단을 법률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집중 취재했다.
"믿었는데…" 입금과 동시에 드러난 '숨겨진 빚'
사건은 지난 12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주택을 매수하기 위해 가계약금 5천만원을 B씨에게 송금했다. 계약 당시 이미 7건의 은행 근저당(부동산을 담보로 잡은 채무)이 설정된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B씨는 A씨가 돈을 보내자마자 "사실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이 더 있다"고 털어놨고, 불과 3일 뒤 등기부등본에는 새로운 근저당이 버젓이 기재됐다. 계약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정보가 거래 직후 뒤바뀐 것이다.
불안한 동행, '가등기' 요구에 돌아온 싸늘한 거절
고민 끝에 A씨는 계약을 유지하기로 마음먹고 스스로를 보호할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추가 근저당 설정 금지', '중도금으로 대부업체 빚부터 상환', '잔금일에 나머지 은행 빚 전부 말소'라는 3가지 특약(특별 약정)을 내걸어 매매약정서를 다시 썼다.
하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A씨는 토지거래허가를 받은 뒤 본계약을 체결할 때, 중도금을 내고 소유권 이전 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해 '내 소유권을 미리 찜해두는 임시 등기(가등기)' 설정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의 권리를 최소한으로 지키기 위한 합리적 요구였지만, B씨의 대답은 싸늘한 거절이었다. A씨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는 말을 실감했다. 법적 보호 장치마저 거부당하자, 남은 것은 깊은 배신감뿐이었다.
"반환 가능"…법조계 중론은 '신의성실 위반'
다수의 변호사들은 A씨가 가계약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계약의 대전제가 흔들렸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법인 게이트의 김범석 변호사는 "매도인은 계약 체결 전 중요한 정보인 추가 근저당에 대해 미리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며 "이미 설정된 채무를 숨긴 것은 고의적인 기망행위(상대방을 속이는 행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계약 취소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는 설명이다.
김경태 법률사무소의 김경태 변호사 역시 "매도인의 일련의 행위들이 신의성실 의무를 위반하고 신뢰관계를 파괴한 것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계약 해제 및 계약금 반환을 청구할 법적 근거가 충분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알고도 재합의했다면?"…신중론도 무시 못 해
반면, 신중한 의견도 제기됐다. A씨가 '숨겨진 빚'의 존재를 안 이후에 새로운 특약을 넣어 계약을 이어가기로 합의한 점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희성의 정현영 변호사는 "처음 근저당권을 속인 것은 계약취소 사유가 되지만, 이후 상황을 모두 인지하고 특약을 넣어 계약서를 다시 작성한 것은 불법적인 상황이 당사자 간 합의로 치유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시 계약취소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새로운 기망 행위가 있어야 한다"며 현재로서는 계약 취소나 해제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법무법인 지금의 유헌기 변호사는 토지거래허가구역 계약의 특수성을 짚었다. 허가 전까지 계약은 법적으로 효력이 확정되지 않은 '계약의 효력이 허가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태(유동적 무효)'인데, 이 단계에서는 원칙적으로 계약금 반환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계약이 허가 불허 등으로 '확정적 무효'가 되어야 반환 청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최종 해법은 '사기 취소', 첫 단추는 '내용증명'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A씨가 취할 가장 강력한 법적 조치는 민법 제110조에 따른 '사기를 이유로 한 계약 취소'다. 계약 체결 당시 매도인이 중요한 정보를 숨긴 '부작위에 의한 기망'을 문제 삼는 것이다.
이 경우 계약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되므로, A씨는 원상회복으로서 가계약금 5천만원 전액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법무법인 베테랑의 김재헌 변호사는 법적 절차의 첫 단추로 '내용증명' 발송을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내용증명에는
①계약 체결 전 추가 근저당 사실을 알리지 않은 점(기망 행위),
②이후 가등기 협조를 거부한 점 등 신뢰 파괴의 구체적 근거,
③이를 이유로 민법 제110조(사기)에 따라 계약을 취소한다는 명확한 의사,
④언제까지 가계약금을 반환하라는 요구 사항 등을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계약 파기의 책임이 매도인의 신뢰 위반 행위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법적 절차에 대비하는 첫걸음인 셈이다. 부동산 거래에 있어 등기부등본 확인은 기본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정보와 상대방의 태도까지 꼼꼼히 살펴야 소중한 자산을 지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