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법대로 했다" 전단지 알바 폭행해 법정에 선 그는 끝까지 자신을 정의의 사도로 여겼다
"난 법대로 했다" 전단지 알바 폭행해 법정에 선 그는 끝까지 자신을 정의의 사도로 여겼다
거리에 대출 전단 돌리던 피해자에 '3단봉' 휘둘러 특수상해 혐의로 기소
"대부업법 위반한 현행범 체포하려던 것" 혐의 끝까지 부인
"대부업 근절" 외치던 자칭 '정의의 사도', 결국 특수상해 전과자가 됐다

지난 7일, 서울동부지법에서 특수상해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그는 불법 대출 광고를 뿌리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다가 법정에 섰다. /연합뉴스⋅셔터스톡⋅편집=조소혜 디자이너
길거리에서 종종 마주치는 '대출 광고'. 명함 크기의 광고는 '즉시 대출', '업계 최저이율', '무담보' 같은 문구로 당장 돈이 급한 사람들을 유혹한다.
지난 7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 법정에 선 피고인 A씨는 그런 광고를 뿌리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는 자신이 경찰은 아니었지만, 서민 등골을 빼먹는 대부업을 근절한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경찰서 등에 "불법 대출 광고를 뿌리는 사람들을 빨리 적발해달라"는 민원을 숱하게 넣었다. 직접 넣은 민원만 1년에 100건꼴이었다.
급기야 그는 직접 정의의 사도가 되기로 했다. '불법 대출' 관련자 검거를 위해 호신용 철제 3단봉까지 들고 거리로 나섰다. A씨는 그 이유에 대해 "경찰을 대신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일로 재판정에 서게 된 A씨는 재판관과 배심원 앞에서 대부업과 그 광고의 폐해에 대해 설파했다.
"국민 과반수가 불법 대출 전단지의 피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사건은 지난해 6월, 주택가를 지나던 A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대출 광고를 뿌리는 B씨를 발견하면서다. 이를 그냥 넘길 수 없었던 A씨는 B씨를 멈춰 세웠다. B씨를 현행범(現行犯)으로 붙잡을 생각이었다.
법원에 제출된 CC(폐쇄회로)TV 영상에는 A씨가 펼쳐진 철제 3단봉(약 60cm)으로 B씨를 거리 한쪽으로 이동하게끔 지시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B씨가 A씨의 요구대로 자리를 옮기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난데없는 A씨의 등장, 그리고 이동 요구에 따졌을 법도 하지만 B씨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B씨는 "경찰이라고 하면서 체포한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서 "(3단봉을 든 A씨가) '경찰을 부를까, 나한테 맞을래'라고 말해서 무섭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사건 당시 B씨는 A씨에게 "(앞쪽에) 주차하겠다"고 말한 후 오토바이를 움직였다. 그 순간 A씨가 움직이는 오토바이 옆을 따라가며 B씨의 얼굴을 향해 3단봉을 휘둘렀다. A씨는 B씨가 도망가려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일로 B씨는 입술 오른쪽이 터지고 치아 한 개가 부러졌다. 병원에선 전치 1주의 진단서를 끊어줬다. B씨가 일당 6만원의 전단지 알바를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A씨는 위험한 물건(3단봉)으로 타인의 신체에 상해를 입혔을 때 적용되는 '특수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① "대부업법 위반한 적 없다" vs. "법 위반 현행범 제지한 정당행위"
하지만 A씨는 정당행위였다고 주장했다. 대부업법이 금지하는 불법 광고를 뿌리는 '현행범'을 잡다가 벌어진 일이라는 것. 이런 인식을 보여주듯 A씨는 재판 내내 피해자 B씨를 '범인'으로 불렀다. 오죽했으면 재판장이 "피고인 입장에서 피해자는 현행범이지, 피해자는 아닌 거죠?"라고 물을 정도였다.
정당행위로 인정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족했다. 일단 B씨는 대부업법을 위반하지 않았다. 사건 이후, B씨가 대부업법이 아닌 경범죄 처벌법(광고물 무단부착 등) 위반으로 범칙금 5만원을 부과받은 사실이 근거였다. 이후 A씨가 별도로 피해자 B씨를 대부업법으로 고발한 사건에서도 B씨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를 두고 A씨의 변호인은 "(B씨는 같은 사안으로) 이미 범칙금을 받았기 때문에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사는 "수사기관에서는 피해자가 대부업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B씨가 대부업체 조직원인 것도 아니었다. 지방에 거주하던 B씨는 "코로나19로 일자리가 없어, 한 인터넷 사이트에 '서울' '아르바이트'를 검색해 알바를 구했다"고 했다.

②"입술 터지고 치아 부러졌다" vs. "상해라면 병원 갔을 것"
A씨는 B씨가 입은 상처도 대수롭지 않게 판단했다. A씨 변호인은 당시 B씨가 연고만 바르고 병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가벼운 상처에 불과했다고 변론했다. 상해죄의 상해는 추가 진료 등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데 B씨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는 취지였다.
만약 죄가 된다면 '특수상해'가 아닌 '특수폭행'이라고 했다. 3단봉을 휘둘러 때린 점만은 인정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A씨에게 적용된 특수상해보다 특수폭행이 형량이 더 낮다.
하지만 검사는 "때리는 데 그친 것(폭행)과 상처가 나고 다치게 한 거(상해)는 구별할 수 있다"며 "입술이 터지고 치아가 부러졌는데 다친 게 아니냐"고 반박했다. B씨가 "치아가 흔들렸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었다"며 치료를 안 한 건 "돈이 없어서"라고 진술한 점도 검사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A씨는 그런 피해자를 보고도 사과를 하지도, 치료비를 주지도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A씨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법을 근거로 행동을 해서 기본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잘못한 게 없으니 사과도 치료비도 줄 필요 없다는 취지였다.
③ "헬멧 열린 틈으로 얼굴 맞았다" vs. "얼굴이 아닌 헬멧 때렸다"
뜬금없이 유튜브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A씨는 "헬멧을 쓰고 있는 사람을 3단봉으로 때릴 때 3단봉이 강한가, 헬멧이 더 강한가 하는 유튜브 영상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A씨에 따르면 더 강한 쪽은 헬멧이었다. 그 영상을 본 기억 때문에 A씨는 B씨의 헬멧을 가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얼굴을 때렸다"는 검사의 의견은 사실과 다르다는 의미였다.
A씨의 주장대로 헬멧을 때렸다면 왜 B씨 얼굴에 상처가 나고 치아가 부러졌을까. 이에 대해 B씨는 당시 헬멧의 앞부분 덮개가 눈 부위까지 올라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코 일부와 입, 턱이 노출돼 있었다는 뜻이다.
피고인의 최후 변론 시간. 보통의 경우 "반성한다"거나, 공소사실을 반박한다. 그런데 A씨는 "불법 대출 광고의 반사회적인 특성을 말하겠다"고 입을 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재판장이 "(피고인은 대부업 사건의) 피해자인가?"라며 "피고인과 관련성이 있는 부분에 한해서 말해달라"고 제지했다. A씨는 "알겠습니다"고 대답했지만 결국 "(불법 대출 광고의 배포는) 중대 범죄"라거나 "행복한 골목이 스트레스의 원흉이 되고 있다"고 불법 대출, 그리고 그 광고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앞서 검사가 "대부업에 악감정이 있냐"고 묻자 A씨는 도리어 검사에게 "일반 서민들의 애환을 모르는 게 아닌가 싶다"고 반박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최후 변론을 끝냈다.
"이 재판을 통해 전국 각처에서 벌어지는 사채 살포 범죄가 완전히 근절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약 3시간에 걸친 배심원 평의. 7명의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유죄 판단을 했다. 재판부도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피고인 A씨의 주장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주장하는 동기와 목적이 아무리 정당성을 띠어도 목적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불법적인 수단까지 용인할 수 없다"며 "3단봉을 사용하면서까지 현행범으로 체포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사건 당시 피해자는 저항 없이 스스로 오토바이를 세웠다. 더불어 피고인 A씨에게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었고, 설령 그렇다 해도 철제 3단봉을 이용해 폭행을 휘두른 것은 과도한 행동이었다는 취지다. 이를 바탕으로 '정당행위'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피해자 B씨의 피해가 상해에 해당한다는 판단도 피고인에게 불리했다. 다만,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이고 상해의 정도가 중하지 않은 점은 유리한 양형 사유였다.
이날, "대부업을 처단하겠다" 생각하며 살아온 피고인 A씨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피고인은 이후 항소했다.
이 기사는 로톡뉴스의 윤리강령에 부합하는 사실 확인을 거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