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서류 훔쳤다" 동업자 고소한 대표... 텔레그램 한 통에 뒤집힌 판결
[무죄] "서류 훔쳤다" 동업자 고소한 대표... 텔레그램 한 통에 뒤집힌 판결
수억 원대 주식 투자와 해외 도피
사라진 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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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수십 년 지기 친구 사이에서 벌어진 수억 원대 주식 투자 분쟁이 형사 고소로까지 비화했다가 결국 법원에서 무죄로 결론 났다. 회사가 빚더미에 앉자 해외로 도피했던 대표가 주식 정산을 위해 계약서 원본을 가져간 친구와 직원을 절도범으로 몰았지만, 재판부는 '대표의 묵시적 승낙'이 있었다고 봤다.
사건의 발단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 사이인 A씨와 피해자 C씨(회사 D 대표)는 의기투합하여 비상장 주식 E사의 주식을 매수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각각 약 5억 원씩 투자해 총 10억 원 상당의 주식을 사들였다. 다만 편의상 주식 명의와 계약서는 모두 C씨가 운영하는 D회사 이름으로 해두었고, 계약서 원본 역시 C씨가 보관했다.
문제는 2022년 5월, D회사의 자금 사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터졌다. 채권자들의 독촉이 심해지자 C씨는 필리핀으로 출국해 버렸고, 떠나기 직전 자신의 회사 직원인 B씨에게 은밀한 지시를 내렸다. "채권자들이 들이닥칠 수 있으니 회사 서류와 컴퓨터를 내 아버지 집 컨테이너로 옮겨라."
C씨의 지시에 따라 직원 B씨는 서류 박스와 컴퓨터를 전남 함평의 한 컨테이너로 옮겼다. 이 소식을 들은 투자자 A씨는 불안해졌다.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권리 관계를 명확히 해야 했기 때문이다. A씨는 B씨에게 "주식 명의를 내 앞으로 옮겨야 하니 보관된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했고, B씨는 컨테이너에서 주식양수도계약서 원본 등을 찾아 A씨에게 전달했다.
이후 귀국한 C씨는 태도를 바꿨다. 그는 "A와 B가 공모하여 내 허락 없이 회사 중요 서류와 컴퓨터를 훔쳐 갔다"며 두 사람을 특수절도(주위적 공소사실 절도 및 절도교사)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A씨가 B씨에게 절도를 교사했고, B씨가 이를 실행했다며 기소했다.
"빨리 정산해 달라"던 대표, 텔레그램 메시지가 발목 잡았다
광주지방법원 형사4단독(판사 지혜선)은 절도교사 혐의로 기소된 A씨와 절도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2024고단672).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피고인들이 서류를 가져갈 때 '불법영득의사(남의 물건을 내 것처럼 이용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그리고 피해자의 승낙이 있었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우선 서류와 컴퓨터를 컨테이너로 옮긴 행위 자체는 피해자 C씨의 지시에 따른 것이므로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쟁점은 컨테이너에 있던 계약서를 다시 꺼내 A씨에게 전달한 행위였다.
재판부는 피해자 C씨가 필리핀 도피 중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에 주목했다. C씨는 도피 중에도 직원 B씨에게 "나 대신 A와 주식 정산 문제를 논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심지어 A씨에게 직접 "E주식 계산 대충 해줘 봐라", "계약서 안 줘도 되니 스캔본이라도 줘라. 그래야 확인하고 넘기지"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정산을 재촉하기도 했다.
법원은 이러한 정황을 볼 때 피해자가 A씨가 계약서 원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이를 용인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약서 내용 확인 없이는 주식 정산이 어렵다"며 "피해자가 정산 협의를 허락한 이상, 피고인들이 계약서를 가져가 정산안을 검토하는 것 또한 허락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A씨와 B씨에게는 남의 물건을 훔치려는 '절도의 고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사라진 컴퓨터의 행방? "제 자리에 돌려놨다" 증언에 혐의 입증 실패
계약서와 함께 도난당했다고 주장된 '업무용 컴퓨터'에 대해서도 법원은 피고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피해자 C씨는 피고인들이 컴퓨터를 훔쳐 갔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했다.
오히려 당시 물건 이동을 도왔던 C씨의 친척 F씨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F씨는 수사 과정에서 "B씨가 '컴퓨터는 다시 사무실에 갖다 놔야겠다'며 컨테이너에서 컴퓨터를 꺼내 사무실로 가져갔고, 내가 직접 선을 연결해 설치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주장과 달리 피고인들이 컴퓨터를 외부로 반출해 영득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C씨가 투자 관련 서류 외에 다른 물품들도 도난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공소장에 포함되지 않아 심판 대상에서 제외됐다.
결국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서류를 훔쳤다거나, 불법적으로 가지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형사소송법상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동업 관계나 채권채무 관계에서 발생한 물품 점유 이전이 무조건 절도가 되는 것은 아니며, 당사자 간의 실질적인 합의 내용과 의사가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참고] 광주지방법원 2024고단672 판결문 (2025. 10. 30. 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