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빚 갚기 싫어 상속 포기한 아들… 8년 만에 들통난 '꼼수' 법원서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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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빚 갚기 싫어 상속 포기한 아들… 8년 만에 들통난 '꼼수' 법원서 제동

2025. 08. 16 09:30 작성
김혜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hj.kim@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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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상속포기 협의서 작성일'이 실제 법률행위 시점

채무자 가족에 '대신 갚으라' 1심 뒤집고 판결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

수천만 원 빚을 진 아들이 어머니 사후 8년이 지나 '상속을 포기한다'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가 법원에 의해 덜미를 잡혔다. 법원은 채무를 회피하려던 명백한 '사해행위(채권자를 해하는 행위)'라며 1심을 뒤집고 채권자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1-1부(재판장 장재윤 부장판사)는 채권자 A사가 채무자 E씨의 형수와 조카를 상대로 낸 사해행위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채무자 E씨와 그의 형제들이 맺은 상속재산분할협의를 채권액 2245만 원 한도에서 취소하고, 형수와 조카에게 이 돈을 나눠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빚 독촉 시작되자… 8년 묵힌 상속재산 첫째 형에게 몰아주기

사건의 시작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씨의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대구에 위치한 부동산을 남겼다. 법적으로 E씨를 포함한 7명의 상속인들은 각자 1/5 등의 지분을 나눠 가질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8년이 흐르도록 상속 등기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이 E씨는 A사에 빚을 졌고, 2019년 법원으로부터 1379만 원과 이자를 갚으라는 확정판결까지 받았다. A사의 독촉이 이어지자 E씨는 2020년 4월 채무불이행자명부에 이름이 오르는 신세가 됐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해 11월, 8년간 잠자던 상속 재산에 움직임이 생겼다. E씨를 포함한 상속인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2012년 10월 30일 자로 협의해, 장남이 부동산을 단독 상속한다'는 내용의 협의서를 작성했다. E씨는 자신의 유일한 재산이 될 수 있었던 상속 지분을 스스로 포기하고 형에게 모두 넘긴 것이다. 형 I씨는 등기를 마치자마자 이듬해 부동산을 팔아치웠다.


"협의는 2012년에 끝났다"… 1심 뒤집은 2심의 '송곳 판단'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채권자 A사는 "빚을 갚지 않으려 재산을 빼돌린 사해행위"라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E씨의 가족들은 "상속 협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2012년에 이미 끝난 일"이라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법률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이 지났다"고 맞섰다. 1심 법원은 가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A사에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서류에 적힌 날짜가 아닌, 실제 법률행위가 이뤄진 시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상속재산분할협의서의 작성일이 2020년 11월 16일로 명시돼 있다"며 "어머니 사망 8년 뒤, E씨가 채무불이행자로 등재된 직후에 등기가 이뤄진 점 등을 볼 때 협의가 2020년에 성립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법원은 가족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E씨의 채무 상황을 가족들이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큰 점 ▲2012년에 협의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가족들의 진술 외에는 없는 점 ▲수년간 재산세를 단독 상속했다는 형 I씨가 아닌 다른 형제(G)가 낸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꼼수의 대가"… 결국 빚 대신 갚게 된 형수와 조카

재판부는 E씨의 상속 포기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면서 한 '사해행위'라고 명확히 했다. 법원은 "채무초과 상태인 채무자가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상속 지분을 포기해 일반 채권자에 대한 공동담보를 감소시킨 것은 원칙적으로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재산을 넘겨받은 형 I씨 역시 이러한 사정을 알았을 것('악의'가 추정됨)이라고 봤다. E씨에 대한 법원의 채무 관련 서류를 가족들이 송달받은 기록 등을 볼 때, "사해행위인 줄 몰랐다"는 가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E씨의 '꼼수'에 제동을 걸었다. 다만 형 I씨가 소송 중 사망하면서 그의 상속인인 아내(E씨 기준 형수)와 자녀(E씨 기준 조카)가 책임을 물게 됐다. 부동산은 이미 제3자에게 팔려 돌려받을 수 없게 됐으므로, 법원은 A사의 채권액 2245만 7532원을 형수와 조카가 상속 지분(3:2)에 따라 각각 1347만여 원과 898만여 원씩 나눠 갚으라고 판결했다.


빚을 피하려던 E씨의 선택이 결국 형수와 조카에게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결과로 돌아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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