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수술 직후 아버지에 ‘29억 각서’ 받아낸 자녀들, 법원에서 퇴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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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수술 직후 아버지에 ‘29억 각서’ 받아낸 자녀들, 법원에서 퇴짜 맞았다

2025. 07. 15 15:37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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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12시간 압박해 각서 받아낸 자녀들

법원 “선량한 풍속 위반, 무효” 판결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심장 수술을 받고 갓 퇴원한 아버지를 12시간 넘게 압박해 사실상 전 재산을 넘긴다는 각서를 받아낸 자녀들이 제기한 29억 원대 소송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아버지 B씨는 2023년 3월, 가슴을 여는 큰 심장 수술을 받았다. 열흘 남짓 병원 신세를 진 그는 4월 9일, 자녀인 A씨 등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몸을 가누고, 말도 어눌한 상태였다. 그가 집에 도착한 지 한 시간 만에 가족 간의 비극은 시작됐다.


“내연녀와 살려거든, 재산을 포기하세요”

“내연녀와 함께 살겠다.” 아버지의 폭탄선언에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자녀들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산이 섞인 아파트에 내연녀를 들일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장남 A씨는 “차라리 경찰을 불러 나를 주거침입으로 신고하라”며 언성을 높였고, “어머니에게 상속받은 재산을 우리에게 나눠주고 각자 인생을 살자”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날 오후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무려 12시간에 걸친 압박이 이어졌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휴식을 권하는 가사도우미의 말을 무시했다. 아버지 회사의 운전기사와 임원을 밤중에 집으로 불러들여 아버지의 재산 내역을 샅샅이 훑고, 차명재산이 있는지 추궁했다. 며느리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아버지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장면을 촬영했다.


‘숨긴 재산 1원이라도 나오면 전 재산 몰수’

밤샘 압박 끝에 2023년 4월 10일 새벽 1시, 아버지는 결국 증여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계약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 매매대금 29억 전액을 자녀들에게 증여하고, 만약 자녀들이 확인하지 못한 ‘숨겨진 재산이 1원이라도 발견될 경우’ 아버지의 전 재산을 자녀들에게 넘긴다는 조항까지 포함됐다.


이후 아버지는 실제로 아파트를 29억에 팔았지만, 약속된 돈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매매대금 중 일부로 오피스텔을 사서 손주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신탁 계약을 맺었다. 이에 자녀들은 “계약대로 29억을 달라”며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 “자식의 도리 벗어난 비정상적 행위”

수원지방법원 민사14부(재판장 문현호)는 자녀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아버지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이 증여계약이 민법 제103조가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법률행위’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자녀들)들은 피고(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취약한 시점을 이용해 강압적으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녀가 부모의 재산 내역을 확인하고 차명재산을 조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벗어난 원고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피고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었다”고 꾸짖었다.


특히 ‘숨긴 재산 1원’ 조항에 대해서는 “피고의 재산권을 박탈해 생존을 어렵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피고의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거주이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사회상규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참고] 수원지방법원 2023가합20283 판결문 (2025. 7. 9.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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