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상주·월급 87만원⋯이 경비원 채용엔 아무 문제가 없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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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상주·월급 87만원⋯이 경비원 채용엔 아무 문제가 없어, 문제다

2019. 12. 02 13:38 작성
조하나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one@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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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여자고등학교 경비원 채용 공고 논란

주말 '24시간 상주 의무'⋯월급은 9시간 일한 것만 적용해 87만원

현대판 노예 아니냐 비판에도, 노동부 답변은 "채용 공고 아무 문제 없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24시간 상주가 의무인 한 경비원 채용 공고가 논란이 됐다. 근무 시간은 9시간만 인정했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부산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내건 경비원 채용 공고를 두고 '노예 계약' 논란이 일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24시간 '학교 상주'를 의무로 해놓고선 일한 시간은 9시간만 쳐준다는 내용이 문제였다. 나머지 '15시간'은 근무지에 있어도 근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이 학교는 "아무 문제가 없는 채용 공고"라는 입장을 냈다. 사실인지 알아봤다. 놀랍게도 학교 말이 맞았다. 이런 비상식적인 채용 공고가 왜 '합법'인걸까.


경비원인가, 노예인가⋯월급 87만원에 주말 24시간 상주 근무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부산의 공립 A여고는 지난 25일 경비원 채용 공고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격일제 2교대로 만 50세 이상 65세 미만의 경비원을 모집하는 내용이었다.


공고문에 따르면 경비원은 평일 16시간, 주말 및 공휴일 24시간을 학교에서 상주해야 한다. 문제는 이 시간이 다 근로시간은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평일의 경우 6시간만 근무시간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10시간은 수면 및 휴식시간으로 지정했다. 주말 및 공휴일에도 9시간을 근무시간으로, 15시간은 수면·휴식시간으로 정했다. 학교에 상주해야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한 달에 104시간만 근로한 것이 되기 때문에 기본급은 87만원에 불과했다.


논란이 된 경비원 채용 공고.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일 있으면 시킬 거면서⋯" 급여 낮추기 위한 '꼼수' 비판

이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급여를 낮추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노예 같은 노동계약'이라는 말도 많았다.


특히 학교 경비원들이 학교에 급한 일이 벌어지면 당장 투입돼야 하는데,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비상시를 대비해 경비원을 학교에 묶어두고 있다면 그에 합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게 맞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 법원은 근무 대기 시간을 '휴게시간'으로 규정하고 임금을 주지 않는 사업주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달 울산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김관구 부장판사)는 "근로자의 대기시간을 휴게시간으로 간주해 임금 및 퇴직금을 미지급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사업주에게 1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이런 판결 태도대로라면 A여고의 '꼼수'는 불법이 확실해 보인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지점도 "명백한 불법을 이렇게 대놓고 저지를 수 있는가"에 있었다.


노동부 "근로기준법 예외에 해당⋯채용에 아무 문제 없어"

하지만 고용노동부 취재 결과, A여고 채용공고는 모두 합법이었다. 이 학교 경비원이 '감시·단속적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현행법(근로기준법 제63조)상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규정되기만 하면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더불어 이들에게는 연장 및 휴일근로가 인정되지 않고 주휴수당, 휴게시간과 관련한 규정도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이 이런 예외를 허용하는 건 '감시·단속적 근로자'의 특수성 때문이다. 법에서 말하는 '감시·단속적 근로자'는 다음과 같다. “감시업무를 주업무로 하며 상태적으로 정신·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 또는 “근로가 간헐· 단속적으로 이루어져 휴게시간·대기시간이 많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근로기준법 시행규칙 제10조)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대표적으로 아파트 경비원이나 학교 당직근로자를 말한다"며 "'감시·단속적 근로자'가 맞다면 이들에게는 휴게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놀랍게도 불법이 아닙니다⋯고용노동부 허락만 받았다면

하지만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은 ‘작업을 위해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 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A여고 경비원들이 실질적으로 학교 당국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을 경우, 대기시간에도 임금을 줘야 맞는 게 아닐까.


이에 대해 법제처는 "고용노동부 장관로부터 감시·단속적 근로 승인을 받았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법제처는 "평소의 업무는 한가하지만 돌발적인 사고발생에 대비하여 대기하는 시간이 많은 업무인 경우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승인될 수 있다"고 했다.


"단 △실제 근로시간이 대기시간의 반 정도 이하로 8시간 이내이어야 하고, △대기시간에 근로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수면 또는 휴게시설이 확보되어 있어야 하는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A여고가 몇 가지 조건만 준수하면 문제가 된 채용공고대로 경비원을 뽑아도 합법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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