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택배 오인해 섭취, 절도죄일까?…법조계 “불법영득의사 입증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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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택배 오인해 섭취, 절도죄일까?…법조계 “불법영득의사 입증이 관건”

2025. 09. 25 09:33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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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약식명령 불복해 정식재판 청구하고, 고의성 없었음 적극 소명해야”

A씨가 이웃집에 온 택배를 자기 것으로 오인하고 가져다 먹었다가 벌금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억울합니다”… ‘806호’ 택배 잘못 가져가 먹었다 ‘절도죄’ 벌금 100만원


“택배를 잘못 가져가 먹었을 뿐인데 절도죄라니, 억울합니다.”

이웃집 택배를 자기 것으로 착각해 섭취했다가 절도 혐의로 약식기소돼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한 시민의 사연이다. 법조계에서는 절도죄의 핵심 구성요건인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는지를 두고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건은 한 아파트에서 시작됐다. 908호에 사는 A씨는 어느 날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발견했다. 평소 어머니가 국 종류를 자주 주문했기에 의심 없이 상자를 집으로 가져와 뜯었다. 하지만 내용물을 본 어머니는 “시킨 적 없다”고 답했다. A씨는 택배 상자에 ‘908호’라고 적힌 것을 보고 누군가 보낸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A씨 어머니의 쇼핑 앱에 ‘오배송’ 알림이 떴다. 그제야 택배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인지했다. 하지만 A씨는 과거 경험상 ‘식품류는 오배송 시 수거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미 개봉한 국을 그대로 섭취했다. 모든 것은 사소한 실수라고 여겼다.


평온은 3개월 만에 깨졌다. 경찰로부터 절도 혐의로 조사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A씨는 CCTV에 자신이 택배를 가져가는 모습이 찍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경찰 조사에서 “택배 기사가 흘려 쓴 ‘806호’를 ‘908호’로 착각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고 결국 절도죄 약식기소로 벌금 100만원 처분이 내려졌다.


‘실수’인가 ‘고의’인가…절도죄의 핵심 ‘불법영득의사’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은 A씨에게 ‘불법영득의사(不法領得意思)’가 있었는지 여부다. 불법영득의사란 ‘타인의 재물을 권리자 몰래 자신의 소유물처럼 이용하거나 처분하려는 고의’를 뜻하는 법률용어로, 절도죄가 성립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A씨는 처음부터 택배를 훔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김전수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는 “택배에 적힌 호수를 잘못 보고 가져왔고, 가족이 주문한 것으로 착각했다면 처음부터 고의적으로 남의 물건을 가져가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즉, 택배를 집으로 가져온 행위 자체만으로는 절도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오배송 알고도 먹었다면?…‘점유이탈물횡령죄’ 가능성은


문제는 A씨가 오배송 사실을 인지한 후의 행동이다. 검찰은 A씨가 자신의 택배가 아님을 알고도 이를 반환하지 않고 섭취한 시점에서 불법영득의사가 발생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절도죄가 아닌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는 지점이다.


점유이탈물횡령죄는 주인의 손을 떠난 물건(점유이탈물)을 우연히 발견하고도 돌려주지 않고 가졌을 때 적용된다. 실제로 법원은 잘못 배송된 택배를 고의로 반환하지 않은 경우 점유이탈물횡령죄를 인정한 판례가 있다(부산지법 서부지원 2018고정103 판결).


하지만 A씨는 ‘오배송된 식품은 회수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따라 행동했다고 항변한다. 이는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가로채려 한 것이 아니라, 어차피 버려질 물건이라 판단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법정에서 다툴 여지를 남긴다.


벌금 100만원, 이대로 내야 하나…변호사들 “정식재판 청구해야”


법률 전문가들은 A씨가 억울함을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일권 변호사(김일권 법률사무소)는 “벌금에 대해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불법영득의사가 없었음을 다퉈야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약식명령은 법원이 정식 재판 없이 서류만 검토해 내리는 처분이므로, 이에 불복할 경우 7일 이내에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 역시 “불법영득의사를 부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정식재판에서 고의가 없었음을 입증할 증거를 신청하고, 증인 신문 등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택배 기사의 평소 숫자 표기 습관, A씨 가족의 유사 제품 주문 내역, 쇼핑몰의 오배송 처리 정책 등이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단순한 착각으로 시작된 사건은 결국 ‘고의성’ 여부를 가리는 치열한 법정 다툼으로 향하게 됐다. 한순간의 오해가 범죄자라는 낙인으로 이어진 이번 사건의 최종 결론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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