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폭력 멈추려고" 할아버지 살해한 대학생 손녀, 살인 고의 인정될까
"폭언·폭력 멈추려고" 할아버지 살해한 대학생 손녀, 살인 고의 인정될까
살인 고의 전면 부인한 첫 공판
흉기 사용에 따른 '미필적 고의' 입증 최대 쟁점

서울북부지법 /연합뉴스
말다툼 중 친할아버지를 과도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대학생 손녀가 첫 공판에서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측은 평소 지속된 조부의 폭언과 폭력을 멈추기 위한 우발적인 상해였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은 위험한 흉기 사용과 피해자의 고령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것인지, 그리고 우발성과 평소의 갈등 주장이 향후 처벌 수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속된 갈등과 자택에서의 비극
사건은 지난 5월 18일 오전 11시 50분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한 자택에서 발생했다.
대학생 A(24)씨는 경찰 조사 과정 등에서 평소 친할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에도 A씨는 80대인 할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이게 되었고,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자택에 있던 과도로 할아버지를 찌르는 행위로 이어졌다.
A씨는 범행 직후 스스로 119에 신고했으나, 병원으로 이송된 할아버지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A씨는 현장에서 경찰에 긴급체포되어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피고인 측 주장에 따르면, 평소 빚어진 갈등이 결국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폭력 멈추려 한 우발적 상해" 법정 싸움의 시작
지난 7월 10일 법정에 선 A씨는 연녹색 수의를 입고 어두운 표정으로 재판을 받았다.
방청석에서는 A씨의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숨죽인 채 이 과정을 지켜보았으며, 치매로 요양병원에 있는 할머니는 아직 이 비극적인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이날 첫 공판에서 A씨 측 변호인은 "조부에게 흉기를 휘둘러서 사망하게 한 행위 자체는 인정하되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피해자의 폭언과 폭력을 멈추기 위해 상해를 입힌 것일 뿐, 계획된 살인이 아닌 우발적 행위였다는 주장이다. A씨는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며 오직 재판부의 법적 판단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미필적 고의의 인정 여부와 주요 판단 기준
법적으로는 계획적인 살해 의도가 없었더라도, 자신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했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충분히 성립될 수 있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다음 사정들을 종합하여 고의 여부를 판단한다.
- 흉기의 위험성: 살상력이 높은 과도를 사용했다는 점은 고의 인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 피해자의 취약성: 피해자가 80대 고령이어서 사망 결과가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는 점 역시 불리한 정상이다.
- 결과 회피 행동: 다만 범행 직후 A씨가 직접 119에 신고한 행동은 고의를 다투는 데 다소 유리한 요소로 참작될 수 있다.
과도를 사용해 고령의 피해자를 찌른 행위를 두고, 살인의 미필적 고의 인정 여부를 둘러싼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된다.
만약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어 존속살해죄가 적용된다면,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라 일반적인 '보통 동기 살인'으로 분류될 경우 기본 징역 10년~16년 범위가 권고되나, 고령의 존속이라는 가중 처벌 사유가 있어 실제 처벌 수위는 더 높아질 여지가 있다.
반면 살인의 고의가 완전히 부정된다면 존속상해치사죄 등이 검토되어 처벌 수위는 징역 5년~10년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
'정당방위' 인정 가능성과 향후 전망
변호인이 주장한 "폭언과 폭력을 멈추기 위한 행위"가 형법상 정당방위나 과잉방위로 인정되어 책임을 면하거나 대폭 감경받을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당시 할아버지의 폭력이 '현재 진행 중인 부당한 침해'여야 한다. 만약 말다툼 중 우발적으로 상호 공격하는 싸움 상황이었거나, 폭력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였다면 방어 행위로 인정받기 어렵다.
또한, 24세 대학생과 80대 조부 사이의 현저한 신체적 능력 차이를 고려할 때 과도를 사용한 반격이 방어 수단으로서 상당성(비례성)을 갖추었는지에 대해 재판부의 엄격한 판단이 뒤따를 것으로 해석된다.
정당방위 성립의 법적 요건이 까다로운 만큼 재판부의 판단이 주목되는 가운데, 평소의 폭언·폭력 피해가 구체적으로 입증된다면 이는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형사법의 취지에 따르면 이러한 사정은 양형 단계에서 '피해자 유발' 및 '우발적 범행'이라는 유리한 정상으로 적극 반영되어, 재판부가 권고 형량의 하단을 선택하거나 형을 감경하는 주요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A씨의 119 신고와 우발성 등의 감경 요소, 그리고 존속살해의 반인륜성과 피해자의 고령이라는 가중 요소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향후 판결의 향방을 가를 핵심이다.
피고인 A씨에 대한 다음 재판은 내달 14일 오전 11시에 열릴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