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면 중 여친 성폭행 혐의 소방관, 1·2심 연달아 무죄... 억울함 풀었다
[단독] 수면 중 여친 성폭행 혐의 소방관, 1·2심 연달아 무죄... 억울함 풀었다
피해자 "통증에 깼다" vs 피고인 "눈 마주치고 동의"
법원, 이별 후 고소 정황·사건 직후 메시지 등 피고인 주장 신빙성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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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를 복용하고 자던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소방관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셔터스톡
"수면제를 먹고 자는 여자친구를 성폭행했다"는 준강간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소방공무원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피해자는 "통증에 잠이 깼다"고 일관되게 진술했지만, 법원은 두 사람이 헤어진 뒤 고소가 이루어진 정황과 고소 전 피고인의 주장이 담긴 통화 녹취 등을 근거로 피고인의 손을 들어줬다.
엇갈린 그날 아침, "통증에 깼다" vs "눈 마주치고 동의했다"
사건은 2021년 8월 15일 오전, 중학교 교사인 피해자 B씨(여, 34세)의 집에서 발생했다. 검찰은 피고인 A씨(남, 36세)가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든 B씨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고 상해를 입혔다고 기소했다.
두 사람의 진술은 그날 아침 상황을 두고 극명하게 엇갈렸다.
- 피해자 B씨: "수면제를 먹고 자다가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깼다. 정신을 차려보니 남자친구 A씨가 등 뒤에서 3회 정도 삽입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아프다', '약 먹고 자고 있는데 왜 그랬어'라고 소리치며 항의했다."
- 피고인 A씨: "아침에 깨어 성관계를 하고 싶어 B씨의 어깨를 쓰다듬자 B씨가 눈을 떴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B씨가 엉덩이를 내 신체 부위 쪽에 밀착시키고 비볐으며, 손으로 내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행동을 했다. B씨가 동의했다고 생각해 성관계에 이르렀다."
법원이 무죄 선고한 5가지 결정적 이유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A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① 고소 전 '통화 녹취'가 스모킹 건
B씨는 A씨와 2021년 9월 14일 헤어진 후, 12월 말 형사고소를 했다. 그런데 B씨는 고소 전인 11월, A씨와의 통화 내용을 두 차례 녹취했다.
이 녹취 파일에서 A씨는 "내가 (너를) 깨우려고 자꾸 건드렸다. 그러니까 네가 깨서 내 얼굴을 한 번 봤고, 삽입하기 편하게 자세를 취해주고, 손으로 만져줬다. 그래서 네가 허락했다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재판부는 이 녹취가 형사고소 전에 이뤄진 대화라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녹취 당시)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도 부인하지 않으면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려고 했던 점 등에 비추어 피고인의 발언은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② 피해자 진술에서도 피고인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 확인
B씨 스스로도 법정에서 "피고인이 이 사건 당시 나에게 '해도 되는 줄 알았지, 너도 내 것 만졌잖아'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B씨가 손으로 성기를 만져 동의한 줄 알았다"는 A씨의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③ 성관계 직후 행동이 피해자 진술과 배치
법원은 B씨가 성관계 이후 보인 행동들이 "수면제에 취해 항거불능 상태에서 간음당했다"는 피해자의 진술과는 다소 배치된다고 보았다.
사건 다음 날 B씨는 A씨에게 "다행이에요 덥지 않게 연수 잘 받아요", "아이고 아침부터 출동 있었구나, 밥 먹고 있어요?" 등 평소와 다름없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B씨는 질염 등 상처를 인지하고 A씨에게 "피나는 줄 알았어ㅠㅠ", "곰곰 생각해보니까 연고 왜 줬는지 알겠어" 등의 메시지를 보냈고, 8월 18일과 19일에는 A씨와 함께 산부인과를 방문해 치료를 받았다. 더불어 두 사람은 이별하기 전까지 2차례의 성관계를 더 가졌다.
④ 해가 뜬 오전, 수면제 약효가 떨어졌을 가능성
B씨는 사건 전날 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수면제를 복용했지만, 성관계는 해가 떠 있었던 다음 날 오전에 이뤄졌다. 법원은 B씨가 복용한 약물의 총 수면 시간이 약 7시간 정도라는 임상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또한 B씨가 평소에도 수면제를 먹고 이른 오전에 모닝콜을 받고 일어났던 기록 등을 토대로 "이 사건 성관계 당시 수면제의 약효에서 상당 부분 벗어난 상태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⑤ 피해자가 동의 사실을 기억 못 할 가능성
재판부는 B씨가 법정에서 "제가 자기 전과 후에 늘 기억이 없는 적이 많다"고 진술한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이 사건 성관계 당시 피고인이 진술한 바와 같은 행동(눈 맞춤, 신체 접촉 등)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으로서는 해가 뜬 시점이나 연인이던 피해자의 행동에 비추어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였다고 생각하여 성관계를 하게 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며, 피고인에게 준강간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검찰 항소 기각... "1심의 합리적 의심 해소 안 돼"
검찰은 "피해자에게는 성적 트라우마가 있어 평소 성관계 전 잔잔한 음악을 켜고 춤을 추는 등 충분한 전희 단계를 가졌다"며, 이러한 패턴이 없었던 이 사건은 명백한 준강간이라는 취지로 항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대전고법 청주제1형사부)는 "검사가 항소이유로 든 사정들은 원심이 이미 공소사실의 유무죄를 판단하면서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심의 무죄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참고] 대전고등법원 청주제1형사부 2024노214 판결문 (2025. 4. 3.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