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계약서, ‘이 조항’ 믿었다간 휴지조각 됩니다
혼전계약서, ‘이 조항’ 믿었다간 휴지조각 됩니다
‘내 재산 지키기’는 절반의 성공, ‘스킨십 강제’는 완전한 실패

혼전계약서상 결혼 전 재산 관리 약정은 유효하나, 이혼 시 재산분할 청구권 포기 조항은 무효 가능성이 높다. / AI 생성 이미지
“결혼 전에 쓴 내 재산, 시댁 지원에 쓰지 않겠다”는 약속은 가능하지만, “이혼 시 재산분할은 절대 없다”는 각서는 법정에서 무효가 될 수 있다.
예비부부의 필수 코스로 떠오른 혼전계약서, 과연 어디까지 법적 효력을 가질까?
변호사들은 재산 관리 약정은 유효하지만, 이혼 권리 포기나 사생활 강제 조항은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 자문을 통해 ‘진짜’ 효력 있는 혼전계약서 작성법을 알아본다.
‘내 돈은 내 돈!’… 혼전 재산, 어디까지 지킬 수 있나?
예비부부들이 혼전계약서에 가장 담고 싶어 하는 내용은 단연 재산 문제다. 결혼 전부터 보유한 부동산, 주식 등 ‘특유재산’을 미래의 배우자나 그 가족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지키고 싶어 한다.
법률 전문가들은 민법 제829조에 따른 ‘부부재산계약’을 통해 재산의 소유와 관리 원칙을 정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한병철 변호사는 “결혼 전 취득 재산을 특유재산으로 관리하고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약정은 실무상 작성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재산 목록과 관리 방식을 명시한 계약서는 향후 분쟁에서 부부의 의사를 파악하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인 방패막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김대희 변호사는 “재산에 관한 부분을 미리 정한다면 이는 재산분할에서 유리하게 활용 가능합니다. 그러나 법원은 혼인 기간 중 실제 부부의 재산유지를 위한 노력도 고려하는 점에서 단정적으로 해당 약정대로 재산이 분할된다고 볼 수 없겠습니다”라고 조언하며 약정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이혼해도 재산 안 줘’…법원에서 무효되는 마법의 문장
혼전계약서의 가장 큰 함정은 ‘이혼 시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변호사들은 이러한 ‘재산분할청구권 사전 포기’ 약정은 법원에서 무효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한다.
정진열 변호사는 “‘이혼 시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겠다’거나 ‘특정 재산을 분할 대상에서 무조건 제외하겠다’는 사전 포기 약정은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라고 못 박았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재산분할청구권은 이혼이 성립한 시점에 비로소 발생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역시 아직 이혼하지 않은 당사자가 장차 이혼할 것을 전제로 재산분할청구권을 미리 포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대법원 2016. 1. 25. 선고 2015스451 결정).
결국 법원은 계약서의 문구보다 혼인 기간 동안 상대방이 재산의 유지나 증식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실질적으로 판단해 분할 여부를 결정한다.
‘주 1회 부부관계’ 약속…법으로 강제할 수 없는 사랑
그렇다면 재산이 아닌 생활 수칙은 어떨까? ‘주기적인 친정 방문 보장’, ‘장기간 스킨십 거부 금지’와 같은 조항을 넣으면 효력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만장일치로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민법상 부부재산계약은 이름 그대로 ‘재산’에 관한 약정에 한정된다.
서명기 변호사는 “특히 스킨십 강제처럼 인격권이나 혼인생활 자유와 연결되는 부분은 실제 강제집행 대상이 되기 어렵고, 선언적 의미 정도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즉, 법으로 사랑의 의무를 강제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이진훈 변호사 역시 이러한 조항은 “인격권·혼인생활의 핵심은 강제집행이 불가하고 과도한 제한은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로 무효 소지가 있어 권장되지 않습니다”라며 법적 실효성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도장만 찍으면 끝?…내 계약서, ‘진짜 효력’ 갖추려면
혼전계약서가 효력을 갖기 위해 변호사 서명이 필수는 아니다. 당사자 간의 자필 서명과 날인만으로 계약은 성립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향후 발생할지 모를 “강요로 썼다” 또는 “내용을 몰랐다”는 식의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공증을 받아 증거력을 확보하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실무 팁은 바로 ‘등기’다. 당사자 사이에서는 서명만으로 효력이 있지만, 이 계약 내용을 부부의 채권자 등 제3자에게까지 주장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다.
이진훈 변호사는 “당사자 간에는 서면과 상호 서명만으로도 효력이 있고, 제3자에게 대항하려면 재산계약 등기를 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민법 제829조 4항에 따라 혼인신고 전까지 ‘부부재산약정등기’를 마쳐야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이 생긴다.
결국 제대로 된 혼전계약은 감정적 요구가 아닌, 구체적인 재산 목록과 관리 원칙을 담아 공증과 등기라는 법적 안전장치를 채울 때 비로소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