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1.2억의 덫, 임차권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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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 1.2억의 덫, 임차권등기

2026. 06. 29 14:47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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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입자 대출 빌미로 '선말소' 요구…'동시이행' 아니면 위험

임차권등기가 새 세입자의 대출을 막아 보증금 회수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증금 전액을 받기 전 등기를 말소하면 위험하므로, 잔금일에 보증금 수령과 등기 말소 서류 제출을 동시에 이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 AI 생성 이미지

집주인의 빚 때문에 경매까지 갔던 전셋집, 보증금을 지키려 설정한 '임차권등기'가 이제는 보증금 회수의 덫이 될 위기에 처했다.


새 세입자의 대출을 위해 등기를 먼저 말소해 달라는 요구에 직면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기 전 등기를 푸는 것은 보증금을 허공에 날리는 위험천만한 행위라고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경매 악몽에 걸어둔 '안전핀', 이젠 내 발목 잡나


세입자 A씨의 악몽은 집주인의 채무에서 시작됐다. A씨가 사는 1억 2천만 원짜리 전세 오피스텔에 집주인의 개인 빚으로 강제경매가 들어왔던 것이다.


다행히 경매 절차에서 집을 팔아도 채권자에게 돌아갈 돈이 없다는 '무잉여'를 이유로 경매는 취소됐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계약 만기 후 집주인이 가입했던 보증보험마저 없는 상태였다.


결국 A씨는 카카오뱅크 전세대출 연장을 위해 2025년 8월,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 등기를 마쳤다. 1억 2천만 원의 보증금을 지킬 최소한의 법적 안전핀이었다. 그는 이사하지 않고 계속 거주하며 보증금을 돌려받을 날만 기다려 왔다.


"대출 막힌다" 부동산의 위험한 속삭임


문제는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터졌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GH(경기주택도시공사)의 전세대출을 이용하려는 희망자가 나타나자, 부동산 중개인이 A씨에게 솔깃하면서도 위험한 제안을 건넸다. "등기부등본에 임차권등기가 있으면 대출 심사가 안 나올 수 있다"며 "새 세입자 계약과 동시에 등기를 해제하자"고 설득한 것이다.


A씨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보증금을 돌려받으려고 설정한 등기가 오히려 돈을 돌려받을 길을 막는 걸림돌이 된 셈이다.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새 세입자가 들어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안전핀'을 먼저 뽑아야 할지도 모르는 딜레마에 빠졌다.


변호사들 만장일치 "先말소 절대불가, 순서가 전부"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사연에 만장일치로 '선(先) 말소 절대 불가'를 외쳤다. 대법원 판례 역시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의무가 임차인의 임차권등기 말소 의무보다 먼저 이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홍현필 변호사는 "보증금을 완전히 돌려받기 전에 임차권등기를 먼저 해제해 주었다가, 만에 하나 계약이 어긋나면 대항력을 상실하여 보증금 회수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임승빈 변호사는 특히 '순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부동산 중개업소 말만 믿고 먼저 말소해 주면 대항력 단절·후순위 전락 위험이 생기므로, 말소·반환·신규 임차인 입주의 순서와 시점을 어떻게 짜느냐가 보증금 회수를 좌우한다"고 지적했다.


섣부른 말소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심규덕 변호사 역시 "구두 약속만 믿고 말소 서류를 먼저 넘기는 일은 절대 피하셔야 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실거주'가 진짜 방패…안전한 동시이행의 조건


그렇다면 A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A씨가 현재 해당 오피스텔에 '계속 거주'하며 전입신고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홍푸른 변호사는 "핵심은, 귀하가 그 집에 계속 거주하며 전입신고와 점유를 유지하는 한, 임차권등기를 말소하더라도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우선변제권 자체'는 기존의 전입신고·확정일자에 기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임차권등기는 '이사 나간 뒤' 권리를 지키는 장치이므로, 계속 거주하는 동안에는 등기 없이도 기본적인 권리는 유지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계속 거주'를 전제로 한다. 등기를 말소한 상태에서 섣불리 주소를 옮기거나 점유를 잃으면 모든 권리가 공중분해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유일한 해법은 '완벽한 동시이행'이다.


배성환 변호사는 잔금일에 보증금 지급과 임차권등기 말소 서류 제출을 동시에 이행하고, 가능하면 금융기관이나 중개 절차 안에서 자금 흐름이 확인되도록 진행하는 것이 안전한 방식이라고 조언했다.


보증금 전액이 A씨 통장에 입금되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등기 말소 서류에 절대 도장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일관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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