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왜곡죄 내용 보니…시행 5일 만에 판사·검사 줄줄이 고소, 남발 논란
법왜곡죄 내용 보니…시행 5일 만에 판사·검사 줄줄이 고소, 남발 논란
13만 개미 울린 에디슨모터스 판결 불복에 공수처·특검 수사까지 도마 위
사법권 독립 흔들리나

전국 법원장 간담회 만찬장 들어서는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지난 12일 신설된 '법왜곡죄'가 사법부와 수사기관을 정조준하며 법조계에 거센 폭풍을 몰고 오고 있다.
재판 결과나 수사 방향에 동의하지 않는 당사자들이 판사와 검사, 심지어 공수처장까지 줄지어 고소·고발하면서 사법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최근 법조계에 따르면 스마트솔루션즈(전 에디슨EV) 주주연대 대표 A씨는 지난 14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 재판장이었던 김상연 부장판사를 고소했다.
혐의는 직권남용 및 법왜곡죄다.
이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고발당한 '1호 사건' 이후 일선 법관이 법왜곡죄로 피소된 사실이 알려진 첫 사례다.
사건의 발단은 강영권 전 회장의 1심 판결이었다.
강 전 회장은 2021년부터 2022년 사이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겠다는 허위 공시로 주가를 띄워 약 1,621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에디슨EV는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고, 약 13만 명의 소액주주가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지난달 3일, 재판부(재판장 김상연 부장판사)는 강 전 회장에게 징역 3년과 벌금 5억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핵심 혐의였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과 입찰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고, 강 전 회장을 법정구속하지도 않았다.
피해 주주들은 "13만 명의 피눈물을 외면한 모순된 판결"이라며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새롭게 시행된 법왜곡죄를 근거로 재판장을 수사기관에 넘기기에 이르렀다.

특검팀 26명까지 무차별 고발… "수사·기소 과정이 권한 남용"
법왜곡죄의 칼날은 판사뿐 아니라 수사기관의 수장들에게도 향하고 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16일 오동운 공수처장과 이재승 차장, 그리고 12·3 비상계엄 사건을 수사한 조은석·민중기·이명현 특별검사팀 관계자 등 총 26명을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등에 대한 수사 및 기소 과정에서 인권침해와 법령 적용의 왜곡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 결과가 정치적 의도에 따라 부당하게 흘러갔다는 것이 고발의 요지다.
이처럼 판결이나 수사 결과가 자신의 기대와 다를 때마다 법왜곡죄를 전매특허처럼 꺼내 드는 현상이 확산되면서, 법치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합리적 재량'인가 '의도적 왜곡'인가… 법치주의 시험대 오른 법왜곡죄
2026년 3월 12일부터 시행된 형법 제123조의2(법왜곡죄)는 법관이나 검사, 수사기관 종사자가 타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법령을 위반하여 재판 또는 수사를 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증거를 조작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범죄사실을 인정한 경우도 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이 법에는 중요한 단서 조항이 있다.
"법령 해석의 합리적 범위에서 이루어진 재량적 판단은 법왜곡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이다(형법 제123조의2 제1호).
즉, 단순히 판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채증법칙 위배, 법리 오해가 있다는 주장만으로는 처벌이 어렵다.
법왜곡죄가 성립하려면 재판장이 의도적으로 결과를 조작하려 했다는 '확정적 고의'가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고소·고발 남발이 사법권의 독립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영철 저자의 『기업+(준)법』(2012년)에 따르면, 법왜곡죄 신설 논의 당시부터 법관과 검사의 사법권 행사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독립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불기소처분 시 '헌법소원'·'재정신청' 가능할까? 까다로운 법적 문턱
만약 수사기관이 이번 고소·고발건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보고 불기소처분을 내린다면, 고소인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제한적이다.
우선 헌법소원의 경우, 헌법재판소는 형사피해자만이 청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헌재 92헌마186 등).
법왜곡죄는 국가적 법익을 보호하는 성격이 강해, 소액주주나 시민단체가 '직접적인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헌법소원 자체가 각하될 가능성이 크다.
불복 수단인 재정신청 역시 문턱이 높다.
형사소송법 제260조에 따르면 고소인은 재정신청이 가능하지만, 고발인은 직권남용 등 특정 범죄에 대해서만 재정신청권이 부여된다.
현재 법왜곡죄는 재정신청 대상 범죄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시민단체와 같은 고발인은 검찰항고 외에 법원의 직접 판단을 구할 길이 막혀 있는 상태다.
오히려 근거 없는 고발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대법원 판례(2009도6614)는 불기소처분에 확정력이 없다고 보지만, 허위 사실에 기반한 고소·고발임이 밝혀질 경우 형법 제156조에 따른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2023나49662) 역시 고소인이 과실로 범죄혐의가 없음을 알지 못한 채 고발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결국 법왜곡죄가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도구가 될지, 아니면 판결 불복자들의 분풀이 수단으로 전락할지는 향후 수사기관과 법원이 얼마나 엄격하게 법을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법부 독립과 국민의 사법 신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엄중한 과제가 법조계 앞에 놓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