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 중이니 30분 뒤에 오세요"…119 구급차는 '콜택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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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중이니 30분 뒤에 오세요"…119 구급차는 '콜택시'가 아니다

2025. 08. 13 10:55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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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처럼 이용해도 처벌 규정 없고, 거절하면 민원 폭탄

딜레마에 빠진 응급 현장

비응급 환자 이송 거절 후 ‘불친절’ 민원을 받은 119 구급대원이 경고 처분을 받았다. /연합뉴스

열이 나고 가래와 콧물 때문에 힘들다는 다급한 신고. 6년 차 소방관 이은용 대원은 즉시 구급차에 올랐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신고자의 첫마디는 황당했다.


"샤워를 해야 하니 30분 뒤에 와달라."


약속된 시간에 맞춰 도착하자, 신고자는 방금 샤워를 마친 듯 태연히 혼자 걸어 나왔다. 이 대원은 "응급환자 이송이 목적인 구급차를 30분이나 기다리게 하시면 안 된다"고 정중히 설명했지만, 환자가 원하는 병원까지는 이송했다.


하지만 다음 날 그에게 돌아온 것은 "모멸감을 느꼈다"는 민원과 공무원의 '친절 의무' 위반을 사유로 한 '경고' 처분이었다. 1년간 포상 금지 등 불이익이 뒤따르는 행정상 처벌이다.


피부 가렵다고 119 호출…거절 못 하는 구급대원

이은용 대원의 사례는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지난 7월, 한 40대 여성은 '피부 가려움증'을 이유로 119에 신고했다. 구급차에 오르자마자 "의사도 없는데 무슨 응급 처치를 하냐", "에어컨 필터 청소는 하냐"며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응급 상황이 아닐 땐 다른 차량을 이용해달라"는 구급대원의 원칙적인 안내에 "내가 이것 때문에 죽으면 책임질 거냐"며 병원으로 가는 내내 화를 냈다.


지난해 119 구급 출동 건수는 약 350만 건에 달하지만, 실제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 수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비응급 상황의 구급차 호출이 그만큼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장 구급대원들은 속이 타들어 간다. 규정상 비응급 환자의 이송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 구급대원은 "이송을 거절했다가 민원이 들어오면 그 판단을 했던 대원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온다"며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친절 의무'의 덫, '공무집행방해'는 먼 나라 얘기

법적으로 보면, 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할 명확한 규정은 없다. 만약 명백한 '허위 신고'라면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지만, "피부가 가렵다"거나 "열이 난다"는 신고를 허위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구급대원의 발목을 잡는 것은 국가공무원법상의 '친절 의무'다. 이은용 대원의 사례처럼, 원칙을 설명하는 말 한마디가 '불친절'로 둔갑해 민원이 제기되면, 조직은 일단 해당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구조다.


법원은 이러한 '경고' 처분이 비록 법적 징계는 아니더라도 표창 공적 소멸, 표창 대상자 제외 등 실질적인 불이익을 주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본다.


결국 구급대원들은 잠재적인 민원과 징계의 위험을 감수하느니, 비응급 환자일지라도 '콜택시'처럼 원하는 병원까지 이송해주는 편이 안전하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미국은 구급차 이용이 유료이고, 일본은 "응급의료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점을 시민에게 명확히 고지한다. 119 구급차가 진짜 위급한 환자를 위한 '골든타임'을 지켜낼 수 있도록, 비응급 호출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제도적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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