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악몽, 남의 일 아니다"... 전국 아파트 절반이 '스프링클러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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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악몽, 남의 일 아니다"... 전국 아파트 절반이 '스프링클러 0개'

2025. 11. 27 17:20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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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엔 초기 진압 골든타임이 없다

4,700개 마천루의 민낯

홍콩 화재 현장 /연합뉴스

지난 26일, 홍콩의 고층 아파트 단지를 덮친 화마는 순식간에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다. 대나무 비계를 타고 번진 불길 앞에, 화재 초기 진압의 성패를 가르는 '골든타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마천루 숲을 이룬 대한민국 역시 이 위험한 시나리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고층 건축물(30층 이상 또는 120m 이상)은 2024년 기준 4,756개 동에 달하며,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도 126개에 이른다. 문제는 화려한 외관 속에 가려진 '안전의 빈틈'이다.


전국 아파트 단지의 절반에 가까운 49%(2만 4,401단지)가 스프링클러조차 설치되지 않은 무방비 상태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충격을 주고 있다. 법은 존재하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는 닿지 않는 '법적 불일치'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화마(火魔) 앞의 무방비 도시, 노후 아파트가 위험하다

재난 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초고층 및 지하 연계 복합건축물은 5년 새 67개가 늘어날 정도로 급증세다. 현행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50층 이상 건물에 대해 지상으로부터 최대 30개 층마다 피난 안전구역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화재 시 40분 이상 물을 쏟아낼 수 있는 스프링클러 기준 또한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 엄격한 기준은 '신축' 건물에만 유효한 방패다.


2018년 6층 이상 건물 전 층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기 전, 특히 1990년 이전에 지어진 15층 이하 노후 아파트들은 법망을 비껴가 있다. 실제로 전체 아파트 단지 중 15층 이하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곳은 5,855단지에 달한다. 화재 발생 시 초기 진압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스프링클러가 화재 현장에 소방력이 도착하기 전까지 버텨주는 유일한 '생명줄'이라고 강조한다. 고층 건물의 경우 최소 20분의 작동 시간이 확보되어야 하지만, 노후 아파트는 이 골든타임을 확보할 물리적 장치 자체가 부재하다.


'닫혀야 사는' 방화문, 현실은 열려있는 '죽음의 통로'

설비 부족만이 문제가 아니다. 화재 확산을 막아야 할 '방화구획'과 '방화문' 관리 실태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건축법 시행령」과 관련 규칙은 방화문이 언제나 닫혀 있거나, 화재 감지 시 자동으로 닫히는 구조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연기와 유독가스의 이동을 차단해 인명 피해를 줄이는 핵심 방어선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환기나 편의를 이유로 방화문을 열어두거나, 고장 난 채 방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법원은 최근 판결(부산고등법원 2023나52102)을 통해 "방화문은 화재 확산과 대규모 인명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구조와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며 관리 주체의 엄격한 책임을 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방법과 건축법으로 이원화된 관리 기준은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방화구역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경고등 켜진 '법적 사각지대', 소급 적용이라는 '칼'을 빼 들 것인가

결국 핵심 쟁점은 '비용'과 '법리'의 충돌이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소방 기준이 강화되더라도 기존 건물에는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불소급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헌법상 재산권 침해 소지와 과도한 공사 비용 부담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후 아파트는 강화된 안전 기준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왔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제 '강제적 소급 적용'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국민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이 개인의 재산권이나 비용 부담보다 우선한다는 헌법적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대형 화재 위험 건축물에 대한 중과세가 합헌이라고 결정(2017헌바387)하며, 소방 재원 확보와 안전 강화의 공익적 중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단순한 규제 강화를 넘어 실질적인 지원책도 병행되어야 한다.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국가와 지자체가 화재안전 성능 보강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돼 있으나, 현실적인 예산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노후 건물의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되, 이에 따른 막대한 비용을 공공이 일부 분담하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화재는 법의 적용 시점을 따져가며 발생하지 않는다.


하드웨어(스프링클러)의 부재를 소프트웨어(교육 및 훈련, 방화문 관리)로 메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홍콩의 비극이 한국의 내일이 되지 않으려면, 멈춰버린 법의 시계를 현재의 안전 기준에 맞춰 다시 돌리는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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