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해 주먹질하던 남자, 놀라서 자리 피했는데…내가 '뺑소니범'이 되었다
술 취해 주먹질하던 남자, 놀라서 자리 피했는데…내가 '뺑소니범'이 되었다
'묻지마 폭력' 피하려 차량 이동했는데, 뺑소니 가해자로 신고당해
차량으로 인해 다친 경우 뺑소니 인정될 가능성 높아⋯긴급피난 등 주장해야

운전 중이던 A씨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봉변을 당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이 갑자기 열린 차 창문으로 주먹을 휘두른 것.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황급히 차를 출발시켰던 A씨. 그런데 얼마 뒤 뺑소니로 신고를 당했다. /셔터스톡⋅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졌고, A씨 차가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A씨는 홀로 드라이브에 나섰던 참이다. 차 창문을 내리고 여름밤 공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이 갑자기 열린 차 창문으로 주먹을 들이밀었다.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에게서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급기야 남자는 차 문까지 열려고 들었다. A씨는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황급히 차를 출발시켰다. 신고할 겨를도 없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봉변. 경찰에 신고 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던 A씨에게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며칠 뒤 경찰로부터 뺑소니 신고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은 것. A씨를 뺑소니 가해자로 지목한 건 다름 아닌 문제의 폭력범이었다. A씨가 갑자기 차를 출발시키면서 다쳤던 듯하다.
뜻밖의 폭력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갑자기 뺑소니 가해자라니. A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변호사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변호사들은 "A씨가 사고 당시 주취자로부터 무차별적인 폭력을 당하는 상태였던 점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토대로 긴급피난을 주장해야 하는 상태"라고 했다.
형법상 긴급피난이 인정되는 상태였다면, 뺑소니 행위 역시 면책받을 수 있을 거라는 취지였다. 우리 형법 제22조는 ① 법익을 침해당하는 위급하고 곤란한 상황에서 ② 이를 피하기 위해 한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
유승 종합법률사무소의 신동희 변호사는 "A씨는 주취자의 폭력 등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차를 출발시킨 상황"이라며 "이러한 점에서 긴급피난의 법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봤다.
법무법인 오른의 백창협 변호사는 "긴급피난을 주장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증거확보가 관건"이라고 했다. 주취자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었고, 이를 피하려 긴급히 출발한 사정을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어 "일단 뺑소니 신고가 접수됐으니, 수사기관에 당시 사정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리하면 실제로 주취자가 A씨 차량에 치여 다친 거라면 뺑소니 혐의 자체는 인정되지만, 긴급피난을 위해 차를 움직였다는 점을 입증한다면 무혐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란 취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