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직위 만들어 '셀프 월급' 시도...조합 정관 조작, 법의 심판은?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유령 직위 만들어 '셀프 월급' 시도...조합 정관 조작, 법의 심판은?

2025. 11. 14 11:29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사문서위조 vs 업무상배임, 4년 전으로 시간여행한 급여 규정...법조계 '명백한 형사처벌감'

한 조합에서 정관을 조작해 과거에 없던 '유령 직위'를 만들고, 급여를 소급 지급하려던 시도가 발각되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내가 알던 조합 정관이 아니었다. 있지도 않던 '유령 직위'가 4년 전 과거에서 되살아나 월급을 요구하고 있었다.


한 조합원이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조합 총회 책자에 담긴 정관 개정안, 분명 과거 정관에는 없던 'a'라는 직위가 버젓이 등장해 월급을 달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심지어 그 월급의 결정 시점은 4년 전인 2020년으로 조작돼 있었다. 조합의 투명성을 상징해야 할 정관이 누군가의 사익을 위한 '시간여행 문서'로 둔갑한 순간이었다.


과거 정관에 버젓이...한 조합원의 눈썰미가 밝혀낸 '유령 직위'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조합원 A씨는 서면결의로 통과될 정관 개정안을 꼼꼼히 살피다 기이한 점을 발견했다. 개정안 비교표의 '과거 정관' 항목에 난데없이 'a'라는 직위가 기재돼 있었던 것이다. A씨는 "수년간 조합원으로 활동하며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직위"라며 "마치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교묘하게 끼워 넣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의심은 꼬리를 물었다. 2024년에 진행되는 개정임에도, 'a 직위의 급여는 2020년에 추진위원이 결정한다'는 비상식적인 문구가 담겨 있었다. 이는 특정인에게 소급하여 거액의 급여를 지급하려는 의도로 읽혔다. 여기에 "소수 인원만 모아 임시총회에서 급여 지급을 의결하려 한다"는 내용의 녹취 파일까지 드러나면서, '유령 직위'를 둘러싼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사문서위조냐, 업무상배임이냐...법의 칼날은 어디로 향하나


법률 전문가들은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다만, 어떤 칼날을 빼 드느냐에 대해선 시각이 갈렸다. 일부는 조합 자금을 부당하게 지급하려 한 행위(결과)에 초점을 맞춰 '업무상배임'이나 '사기죄' 적용을 우선 검토했다.


하지만 김경태 변호사(김경태 법률사무소)는 문서 조작 행위(원인) 자체를 정조준했다. 그는 "과거 정관에 없던 직위를 마치 존재했던 것처럼 허위로 기재한 행위는 형법상 사문서위조죄(제231조)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단언했다. 작성 권한이 없는 자가 조합원들의 의사결정을 속일 목적으로 허위 문서를 만든 것 자체가 중범죄라는 설명이다. 그는 "날짜를 2020년으로 소급한 부분 역시 사문서변조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법원 판례 역시 '문서 작성 권한을 넘어서거나 날인자의 의사에 반하는 문서를 작성하면 사문서위조죄가 성립한다'(92도2047 판결)고 본다. 즉, 조합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목적으로 가짜 정관을 만든 것만으로도 법의 심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총회 결의도 '무효' 가능성...승패는 '증거'에 달렸다


형사 처벌과 별개로, 이 수상한 정관 개정 절차 자체를 무력화할 방법도 있다. 이장주 변호사(법무법인 영진)는 "조합원의 부담이 되는 계약은 조합원 2/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할 수 있다"며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한 총회 결의는 민사상 '조합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결국 승패는 '증거'에 달렸다. 법조계는 불법 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문제가 된 과거·개정 정관 자료 ▲총회 책자 ▲대화 녹취록 ▲향후 지급될 급여 내역 등을 꼼꼼히 수집해 경찰이나 검찰에 고소·고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조합원의 날카로운 눈썰미가 조합 전체를 뒤흔들뻔한 비리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유령 직위'를 만들어 조합의 곳간을 노렸던 이들의 시도가 어떤 법적 결론을 맞이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